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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선

[미스터리 수사반] 혼선 : 꽃이 피지 않는 마을 ep.3

 

※ 읽기 전에

- 이 글은 잠뜰TV의 컨텐츠 '미스터리 수사반'의 2차 창작 소설입니다. 모든 내용은 픽션이며 실제 인물, 단체,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 살인, 사고, 부상 등 다소 자극적이고 잔인한 소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첫 장편 소설인 만큼 미흡한 점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 점 너그러이 봐주시면 감사합니다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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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선

1. 전신ㆍ전화ㆍ무선 통신 따위에서, 선이 닿거나 전파가 뒤섞여 통신이 엉클어지는 일.
2. 말이나 일 따위를 서로 다르게 파악하여 혼란이 생김
3. 줄이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뒤섞임. 또는 그 줄.

 


─ 모든 것이 끝나기까지. D-3

○ 1996년 6월 10일 월요일, 11시 45분

- 잠뜰 경위, 공룡 경장 / 터널 앞

 


 "아 들여보내 줘요!!"
 "아이 안된다니까!!"

 

 

 대낮부터 시끄럽게 싸우는 소리가 들려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따라가 보니, 공룡이 한 남자랑 말씨름을 하고 있었다. 마을 주민 중 한 명으로 보이는 그 중년의 남성은 지나가려는 공룡을 필사적으로 막아서고 있었다. 어이가 없는 상황에 기가 차 잠뜰은 헛웃음을 짓다 둘 사이에 끼어들어 싸움을 멈췄다.



 "공경장, 대체 뭐 해?"
 "경위님! 아니 자꾸 이 사람이 못 들어가게 막잖아요!"
 "글쎄, 못 들어간다니까 그러네!!"

 

 

 남자가 막고 있던 곳은 작은 터널이었다. 입구에 길게 늘여진 능소화가 몇 겹이나 쌓여 커튼처럼 너울거렸다. 다홍색의 꽃들이 바람에 서로 쓸리며, 노을빛 물결이 만들어 내는 황홀함은 저 너머로 넘어가 버리면 전혀 다른 세상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는 착각마저 들게 했다.

 터널 안은 새까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건너편엔 물기를 머금어 짙은 녹빛을 띠는 울창한 풀숲이 우거진 걸 봐선 터널은 마을에서 산으로 넘어가는 길목인 듯했다.

 


 "이장님 말씀 못 들었나? 짐승 나온다고, 짐승!"

 

 

 형사들이 떠날 기미가 없자, 남자는 겁을 주려는 듯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저렇게 버티는 걸 보면 그 누구도 터널을 지나가지 못하게 하는게 본인의 임무라도 되는 듯 했다.

 

 "이 사람, 공무집행방해로 뭐 어떻게 안 돼요?" 공룡은 아직도 불만인지 잠뜰 옆에서 속닥였다. "안된다는 거 잘 알고 있잖아." 잠뜰 역시 속삭이며 반론했다. 두 사람이 뭐라 쑥덕거리는지 남자는 궁금한 기색이었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진 않았다.

 

 

 "저기,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으잉?"

 

 느닷없이 잠뜰이 묻자, 자신이 조사받게 될 생각은 전혀 안 했는지 남자의 입에선 아까와는 다른 힘빠지는 소리가 났다.

 

 

 "이름이야, 뭐... 백육화인데."

 "백육화씨. 오늘 아침엔 뭘 하고 계셨나요?"

 "...잠깐, 지금 날 의심하는 거야?!"

 "아, 아뇨. 오히려 반대입니다. 어디까지나 의례적으로 묻는 말이고, 알리바이 증명을 위한 가장 간단한 방법이니까요."

 

 

 잠뜰의 대답에도 육화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아침에 뭐 하긴, 사람들이랑 같이 농사일했지!"

 "몇 시쯤이었는지 기억하시나요?"

 "누가 시곌 보고 움직여! 그냥 해 뜨면 일 나가고 해 지면 자는 거지."
 "혹시 피해자 등 뒤의 숫자에 대해선..."

 "에잇, 몰라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거듭되는 질문에도 여전히 날카로운 태도를 거두질 않자, 결국 잠뜰이 한 수접고 물러나기로 했다. 돌아가자는 잠뜰의 말에도 공룡은 아쉬운 듯 선뜻 발을 떼지 못했다.

 

 

 "한솔이라도 부를까요?"
 "신뢰평가 깎아 먹을 일 있냐, 괜히 긁어 부스럼 내지 말고 일단 지금은 돌아가자."

 "그래, 그래. 자알 생각했어. 어여 돌아가, 어여."

 

 

 자리를 뜨려는 두 형사의 뒤로 백육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본인이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해 신바람이 나는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몇 마디 덧붙였다.

 

 

 "형사님들이 그렇게 들쑤시고 다녀봤자 별 볼 것도 없어. 이런 촌 동네에 무슨 비밀 같은 게 있겠어?"

 

 

 비아냥에 가까운 충고에 잠뜰은 뒤돌아 대꾸할지 생각하다, 답변을 원한 말이 아니란 걸 잘 알기에 묵묵히 자리를 뜨기로 했다.

 그건 두고 봐야 알겠지. 미처 대답하지 못한 말이 입 안에서 쓸쓸하게 맴돌았다.

 

 


○ 1996년 6월 10일 월요일, 12시 39분
- 잠뜰 경위

 

 

 

 마을을 가로지르는 강을 넘기 위해선 마을 양쪽으로 설치된 다리를 건너야만 했다. 다리를 건넌 잠뜰은 드넓은 논밭 어귀로 발을 디디게 되었다. 푸르게 펼쳐진 녹색의 물결 사이로 짙은 흙 내음을 맡고 있자니, 존재하지도 않는 시골 마을에 대한 향수가 물씬 풍겨왔다.

 

 

 '범인은 대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인 걸까.'

 

 

 이 좁은 마을에서 복잡한 경로를 짰을 리가 없고,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을 전부 꿰고 있다 한들 도주로도 아슬아슬한데, 어떻게 피해자를 현장까지 옮겼을지가 관건이었다.

 시신을 꽤 오랫동안 보관하고 있어야 했으므로 사람이 자주 다니는 곳에 숨겼을 리는 없고, 그렇다고 숲속에 숨겼더라면 사람들이 그렇게 강조하던 '짐승'이 물어갔거나 적어도 눈에 띄는 외상이 생겼을 것이다. 그 '짐승'이라고 불리는 것이 길쭉한 날붙이로 사람의 복부를 찌르고 다니지 않는다면 말이다.

 

 깊은 생각에 푹 빠진 채, 사람 없는 논두렁을 따라 죽 걷던 도중이었다. 익숙한 것이 눈에 보여 잠뜰은 발걸음을 멈췄다. 서너 미터 남짓도 안되는 가까운 앞에 푸른 빛의 조각 하나가 생뚱맞게 떠 있었다.

 

 

 "...단서다!"

 

 

 또다시, 사건도 현장도 아닌 난데없는 곳에 나타나는 푸른 단서. 이젠 나름 익숙해져 망설임 없이 바로 앞까지 다가가 주머니에서 수사학의 별을 꺼내든 순간, 문득 잠뜰의 뇌리에 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여기서 다른 세계로 넘어가면 어떻게 되는 거지? 3년 후면 이미 산사태가 일어난 후잖아.'

 

 

 마을 사람 대부분이 사망한, 야밤중에 일어난 끔찍한 재해. 지금 잠뜰이 서 있는 이곳도 3년 뒤에는 예외가 아닐 것이다. "괜히 갔다가 흙더미에 파묻히는 거 아냐?" 오싹한 상상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괜히 애먼 수사학의 별만 들었다 놨다 하며 못살게 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잠뜰은 어깨를 으쓱해보이며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흙 좀 먹지 뭐." 눈앞까지 대령해 놓은 단서를 그냥 지나치는 건 성미에 전혀 맞지 않았다. 가령 정말 흙더미 사이에 파묻히기라도 한다면 다시 돌아오면 그만이다. 잠뜰이 별을 들자, 단서와 별이 서로 공명하며 푸른 빛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평소와 다른 낌새를 미처 눈치채지도 못한 채 이변은 일어났다.

 

 

 ─ 쨍그랑.

 

 빛이 산산이 조각나며 파편이 수만 갈래로 흩어졌다. 산산이 부서진 조각들이 햇빛을 온 사방으로 퍼트리며 물 위 윤슬처럼 눈부시게 빛났다. 잠뜰은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막으려 했으나 조각들은 몸에 닿자마자 눈송이처럼 녹아 사라졌다. 

 

 경악할 일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산산조각난 단서 대신 거대한 균열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마치 야구공이라도 맞아 깨져버린 유리창처럼 생긴  허공에 떠 있는 균열 너머론 또 다른 마을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장의 집을 들려봐도 별 중요한 단서는 찾지 못했네요."
 "도대체 어딜 간 거야..."


 익숙한 목소리에 익숙한 얼굴, 하지만 무언가 단단히 잘못됐음을 알리는 이 불쾌감. 균열 넘어 펼쳐진 마을엔 친숙하지만, 낯선 두 형사의 그림자가 옅게 늘여졌다.


 "피해자는 표면이 거친..."
 "...쇠줄이..."
 "..."
 "수경사? 각경사님?"


 닿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잠뜰은 너머의 그 둘을 불러보았으나 역시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두 경사는 심각한 얼굴로 들리지 않는 대화를 몇 마디 더 나누더니 점점 멀어져 점차 마을의 풍경에 동화되어 사라졌다.
 균열의 크기도 녹아 없어지는 얼음처럼 서서히 줄어들더니 결국엔 반짝이는 빛 한줄기만을 남기고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순식간에 비정상적인 상황이 나타났다 사라져 버린 탓에 잠뜰은 어안이 벙벙하여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고요한 바람이 굼실굼실 흐르는 논밭 한가운데서 홀로 제자리에 멈춰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 1996년 6월 10일 월요일, 15시 36분
- 각별 경사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각별의 발걸음은 어느새 마을의 외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주민이 많지 않은 동네인데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길로 접어드니, 흡사 버려진 마을에서 홀로 유영하는 기분이 들었다.

 집 뒤편으로 돌아서자, 처마 끝에서 떨어진 낙숫물이 장독대의 뚜껑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와 자연스레 시선이 절로 갔다.
 집 뒤편에도 창문이 있었으나 검은 암막 커튼이 쳐져 있어 내부는 보이지 않았다. 창문 바로 앞으로, 지면에 앞쪽이 깊게 파인 발자국이 찍혀있었다. 빗물이 맑게 고여있는 걸 보아 비를 피해서 처마 밑에 서 있었던 걸까?  창문 옆 비스듬하게 쓰러진 사다리엔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주황색 꽃잎이 눌어붙어 있었다.

 더 구석진 곳으로 들어가자, 비닐로 만든 아치형의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에 비닐하우스가 있었군." 투명한 비닐 너머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의 형체가 어른거렸다. 비닐하우스 입구엔 작물 담을 포대 자루와 손수레가 세워져 있었다. 

 하우스의 입구로 돌아 내부를 보니 모자를 쓴 한 사람이 바쁘게 돌아다니며 작물을 돌보고 있었다. 관리하느라 바쁜지 (아님 그저 신경 쓰고 싶지 않은지) 각별이 내는 인기척에도 별 반응을 하지 않았다.
 잠시 그 사람의 행동을 보고 있자니 각별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밖에서 봤을 땐 그저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으나, 막상 들어와서 직접 보니 행동이 어설퍼 농사일은 커녕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는 걸로 보였다. 정말로 이런 녀석한테 일을 맡겼다고? 차라리 내가 더 잘하겠네. 이 동네 토박이가 아닌 걸까?

 시선을 눈치챈 상대가 몸을 돌려 자리를 뜨려 하자 각별은 재빨리 말을 걸었다. 


 "크흠, 성화관할서에서 나온 형사입니다. 저, 그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구천수... 입니다."


 머쓱하게 건 질문에 의외로 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답은 친절하네, 일 개 못하는 거 빼면 괜찮은 친군 듯? 각별은 마을회관 앞에서 들었던 말을 떠올리며 질문을 이어 나갔다.


 "오늘 아침엔 뭘 하시고 계셨습니까?"
 "집에서 동생이랑 있었습니다. 밖에서 비명소리가 들려 나갔을 땐 이미 문비가 경찰에 신고한 후였습니다."
 "피해자에 대해서 뭐 아시는 건 있으신가요?"
 "아뇨. 처음 보는 사람입니다."
 "숫자에 대해선 뭐 아시는 거 있으십니까."
 "잠시만요, 숫자요? 무슨 숫자요?"
 "피해자의 등 뒤에 써 있던 숫자 말입니다."
 "아... 아뇨. 모릅니다."


 별 도움 되는 정보는 없구만. 이 의미 없는 대화를 도대체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낙담하고 있을 때, 언뜻 상대를 처음 마주했을 때 떠올랐던 의문이 다시 생각났다. "더 하실 질문 있으신가요." 마침 타이밍 좋게 천수가 물었다.  각별은 사람 속내 캐내려 수작 부리는 일은 잘하지도 못하고 할 생각도 없었다. 처음 떠오른 의문을 곧이곧대로 꺼냈다.


 "실례지만 혹시, 이 마을에 사시는 분이 맞습니까?"


 각별의 물음에 천수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밀짚모자 아래 앳된 얼굴에 그늘이 졌다. 덕분에 표정을 읽기 어렵다. 잠시 숨 막히는 침묵이 흐르다 천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시죠?"


 말투는 변함없었으나 본인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어라, 잘못 질문했네. 각별은 늘 그랬듯이 무표정을 유지한 채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일하시는 게 좀 서투르신 것 같아서 말이죠."


 각별의 뻔뻔하게 나오는 태도에 천수는 도리어 말문이 막힌 듯했다. 오히려 반문하지 못하는 걸 보아 본인이 제일 본인 문제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더 이상 할 말은 없으십니까."
 "네, 뭐. 없습니다."


 천수는 할 일이 있다면서 바로 비닐하우스 밖으로 나가버렸다. 각별은 잠시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곤 밖으로 세어 나가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한숨을 돌렸다. 이거 위험한 질문이었나? 그래도 제때 잘 변명해서 신뢰평가는 안 깎아 먹은 모양이었다. 질문 하나 했다고 사람 죽일 듯이 처다볼 건 뭐람. 별다른 소득도 얻지 못한 채 각별도 터덜터덜 자리를 떠났다.

 

 


○ 1996년 6월 10일 월요일, 16시 17분

- 덕개 경장


 선배들과도 헤어지고, 근처 집 문을 두드리니 백발의 중년 남성이 나와 인사를 건넸다. 

 "박태기라고 합니다." 한참은 어린 자신에게도 깍듯이 대해주는 모습에 덕개는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아, 네. 그럼... 오늘 아침에는 뭘 하시고 계셨나요?"
 "아침엔 텃밭을 보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집에 있었고요."
 "다른 특별한 일은 없었나요?"
 "딱히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다."


 무미건조한 대화가 몇 번 오갔으나 딱히 수사에 도움이 될 만한 말은 없었다. 둘의 대화를 듣고 손님이 왔다는 걸 알았는지 한 여성이 집 안에서 나왔다.

 "은백양이라고 합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한 중년의 여성은 이번 사건이 꽤 충격이었는지 눈가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덕개는 어쩐지 두 부부의 분위기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유상종이라 하던가?

 "특별한 일... 아, 최근에 있었죠." 한참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있던 백양이 이내 입을 열었다. "3일 전이였나, 밤중에 앞집 개가 짖더라고요." 앞집 개라면 다화씨가 기르는 잿빛 개를 의미할 것이다. 밤 중에 개가 짖어대는 일이 한두 번은 아닌지  백양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날따라 워낙 오래 짖어서 놀라 방에서 나와보니, 남편이 이미 밖에 나갔다 오더군요.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까 별일 아니라고 들어가서 자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다시 자리에 누웠죠."

 

 

 이 이야기라면... 다화씨와의 대화와도 연계된다. 사건과 연결되어 있을진 아직 잘 모르겠지만 중요한 단서인 건 확실했다.  조사가 끝나고 덕개는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자리를 뜨려 했다. 하지만 뒤통수에서 다시금 부르는 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잠깐만요, 형사님."
 "아, 네, 예?"


 내가 뭐 잘못 말한 게 있었나? 갑작스레 불린 탓에 덕개는 적잖이 당황했다. 목소리의 주인은 박태기씨였다. 먼저 불렀으면서 꽤 오랫동안 말을 꺼내지 않아 그 침묵에 애가 탔다. 그런 덕개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기는 한동안 할 말을 신중히 고르다가, 누가 옆에서 엿듣기라도 하는지 조용히 말을 꺼냈다.


 "형사님들은 범인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네?"


 범인이 누구냐고요? 그건 저희가 알고 싶은데요. 의도를 알 수 없는 질문에 저절로 얼빠진 표정이 지어졌다. 그런 덕개의 반응에도 태기는 진중한 태도를 유지하며 답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 걸까, 뭐라고 대답하는 게 좋을까. '아마 마을 주민분들 중 한 분일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가능성이야 본인들이 잘 알겠지만 그래도 당사자 앞에서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한다고? 이건 좀. '아직 저희도 뭘 알아낸 게 없어서...' 이건 너무 무능해 보이잖아! 다른 대답! 괜찮은 거 없을까? 선배들이라면 뭐라고 대답했을까, 잠경위님이라면... '일반인들에게 수사 내용 발설은 금지입니다.' 음, 이게 제일 낫겠다.


 "수사 관련 내용은 외부인에게 발설 금지라 자세한 내용은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덕개는 강경한 태도로 상대에게 통보했다. 상대가 원하는 대답이 아닐지 몰라도 지금으로선 이 대답이 최선일 것이다.


 "아이들은 아닐 겁니다. 애들이 뭘 알겠습니까."
 "...네?"

 


 뜬금없는 말에 덕개는 또다시 얼빠진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 사람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아이들 말입니다. 애라고 부를 나이는 이미 아닐지 몰라도 아직 세상 물정 잘 모르는 미숙한 애들입니다. 나쁜 짓이라곤 할 리가 없고, 설사 하더라도 아직 뭣 모르고 한 게 분명합니다. 얼마나 천방지축인지 어느 날은 제 창고에서 숨바꼭질하다가... 그후론 창고 열쇠는 애들이 못 건들게 꼭 숨겨놓았죠. 이 이야기도 벌써 오래전 이야기네요.


 말을 길게 하는 것이 익숙지 않은지 중간중간 호흡이 끊겼다. 하지만 그럼에도 말을 멈추진 않았다. 그제서야 덕개는 그가 하고 싶은 말을 알아챌 수 있었다.


  '아이를 지키려는 부모의 마음보다 숭고한 것이 있을까.'
  '눈먼 자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예측 불허의 일들이 벌어질 것입니다.'


 박태기씨는 필사적으로 변호하고 있었다. 마을에 몇 남지 않은 아이들이 혹여나 잘못될까 자신보다 한참 어린 형사에게 빌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수사하면서 범인인지 아닌지 확실하게 가려낼 테니까요. 무고한 사람이 범인이 되는 일은 절대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덕개는 태기를 안심시키려 일부러 명랑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렇군요, 안심이 됩니다." 그도 따라 대답했으나 그 미소는 왠지 모르게 어딘가 씁쓸해 보였다.

 배웅을 뒤로 하고 덕개는 자리를 빠져나왔다. 휴, 말실수 같은 건 안 했겠지? 괜히 꼬투리 잡혔다간 선배들한테 폐가 될 테고, 특히 공선배는 엄청 놀리겠지, 으...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거북한 생각들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다 제 감각이 소곤거리는 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보물찾기하자! 덕개야, 열쇠는 어디에 숨겨져 있을까?'
 "열쇠야 숨겨놓은 사람이 알겠지. 그리고 지금 보물찾기 할 때야?"


 퉁명스럽게 대답하자 삐지기라도 한 건지 더 이상 들려오는 말은 없었다. 아까부터 자꾸 딴소리만 하고, 사건에 대한 단서 같은 걸 주면 안 될까? 대답이 들려올 리가 없는 질문만 남긴 채 덕개는 마저 발걸음을 옮겼다.

 


○ 1996년 6월 10일 월요일, 18시 42분
- 공룡 경장 / 마을 어귀


 마을 어귀에 나무로 된 정자 지붕엔 등나무 꽃이 무성했다. 연자줏빛 꽃들이 천장에서부터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후아..." 공룡이 머리를 식힐 겸 정자에 대자로 눕자, 나무의 냉기가 온몸을 감쌌다. 우거진 꽃들 사이로 바람이 스쳐 지나가며 가벼운 마찰음을 냈다. 바람을 느끼려 눈을 감고 있자니 코끝으로 진한 꽃향기가 느껴졌다.


 "덩굴이 이렇게나 무성한데 용케 정자가 안 무너지고 버티는구나~."


 공룡은 누운 채로 고개만 돌려 정자의 기둥을 바라보았다. 나무를 다듬지 않고 그대로 박아 세워 구불구불한 것이 제법 멋이 있었다. 기둥의 결을 따라 등나무 줄기가 뻗어나가 마치 하나가 된 모습을 찬찬히 훑어보던 공룡의 눈에 무언가가 걸렸다.

 기둥 안쪽 사람의 허리쯤 되는 높이에 홈이 파여있었다. 단순히 오래된 나무에 난 흠집이겠거니 싶으면서도 자세히 확인해 보고 싶어 공룡은 제 자리에 벌떡 일어나 가까이에서 관찰했다.

 우연히 생겼다고는 말할 수 없는  누군가 일부러 파낸 듯한 간격, 아침부터 지금까지 자신을 괴롭히던 그 정체불명의 숫자들.


 "... 이게 왜 여기도 있지?!" 

 

 

 피해자의 등 뒤에 적혀있던 그 숫자와 유사한 형식의 문양들이 기둥에 새겨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삐뚤빼뚤하게 새겨진 문양들은 제법 길이가 길었다. 경위님처럼 실력이 좋은 것도 아니고, 덕개처럼 감이 좋은 것도 아니었지만 본인도 나름대로 수사 경력이라는게 있었다.
 공룡은 파여진 부분을 손가락 끝으로 더듬어 보았다. 세월이 제법 지났는지 무뎌지긴 했어도 망설인 부분은 없었다. 단순 장난으로 파냈다기엔 규칙성이 보였다.

 어느새 공룡은 이 알 수 없는 문양에 푹 빠져버렸다. '눈을 감고 다시 생각을 정리해보자...' 정교하고 규칙성이 보이며 여러 번 사용되는 문양이 존재한다. 아무 이유 없이 파낸 것은 아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파낸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역시, 암호문이 맞는 거겠지."


 문양 하나하나를 글자로 치환한다면 이 정체불명의 문양들의 행렬은 세로로 쓰인 하나의 문장 또는 단어가 될 수 있다. 여러 번 사용되는 문양의 경우, 자주 쓰이는 'ㅇ'이나 'ㅏ', 영어로 치면 'e'나 'a'가 될 것이다. 하지만...

 

 

 "잘 모르겠다~." 

 

 

 공룡은 다시 팔자좋게 뒤로 벌러덩 누웠다. 단 한 문장(어쩌면 단어) 가지고선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짓수는 너무나 많았다. 하루 종일 이것만 붙잡고 낑낑거린다면 어찌저찌 풀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하루를 포기하기엔 리스크가 너무 큰 일이었다.


 "공경장니임!!"
 "이크."


 아까부터 울리던 무전기 소리를 무시하고 있으니 덕개가 직접 찾으러 오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도 쉬질 못하게 만드네. 공룡은 제자리에서 일어나 크게 기지개했다. 어느새 해가 지면서 세상이 노랗게 물들고 있었다. 머리에 묻은 나뭇잎들을 재빨리 어낸 뒤,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후배를 향해 공룡은 아주 최대한 느긋하게 걸어갔다. 


○ 1996년 6월 10일 월요일, 19시 2분

- 잠뜰 경위, 각별 경사, 수현 경사, 라더 경장, 공룡 경장, 덕개 경장 / 이장의 집

 

 

 주황빛으로 물들던 세상이 순식간에 어둠으로 들이찼다. 아직 하늘은 밝았으나 병풍처럼 둘려진 높은 산들 탓에 마을은 한밤중이었다. 마을의 주민들도 일찌감치 자리에 들러 하나둘 집으로 돌아갔고, 흩어졌던 형사들도 이장의 집으로 삼삼오오 모였다.

 이장이 내어준 방은 제법 넓었다. 노란 장판이 널찍하게 깔린 방 한구석엔 사람 키만 한 자개장롱이 서 있었고, 다른 한편은 여섯 명은 충분히 쓸 수 있는 이부자리가 겹겹이 개어 쌓여있었다.
 벽 선반 위에 놓인 인삼주를 보고 한 잔 씩 하겠냐고 묻는 각별에게 술은 근무 끝나고 마시라며 나무라는 잠뜰의 말과 동시에 회의는 시작되었다.


─ 회의 소집 ─
잠뜰 팀장의 회의 소집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일단은 사건부터 되짚어 보고 가자고."


 잠뜰의 말에 다들 초동수사보고서를 들어다보았다. 잠뜰은 보고서를 찬찬히 훑어보며 중요한 점들을 다시 짚었다.


 "피해자의 사망 추정 시간은 7일에서 9일, 현장에서 혈흔이 발견되지 않았고 시신엔 물에 들어간 흔적이 없는 것을 보아, 정황상 범인이 시신을 5시 30부터 8시 사이에 옮겨놓은 것으로 추정되고... 비슷한 시간대에 마을회관을 어지럽힌 것도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여. 왜 이런 짓을 했는지가 관건일 테고.
 살인사건 자체는 일어난 지 꽤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대부분의 증거는 이미 유실되었을 것이고 그나마 찾을만한 증거는 흉기, 상처의 단면이 거친 걸 보아 단순 날붙이는 아닐 거야."


 "그리고..." 마지막 말을 내뱉기 전 잠뜰은 잠시 망설였다. "피해자는 마을 전체에 강한 원한을 가지고 있던 것 같던데. 혹시 이 점 관련해서 뭐 알아낸 사람?"

 잠뜰의 말에 바로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잠뜰도 마을 전체를 돌아다녀 보았으나 그 누구도 피해자를 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 부분이 이번 사건에서 가장 의문스러운 점이었다. 피해자는 대체 뭘 위해 이 작은 산골 마을까지 오게 되었을까. 마을 사람 중 분명 거짓말을 한 자가 있을 테지만 누가 무엇 때문인지는 아직 명확한 바가 없다.


 "뭐, 지금은 늦었으니 어쩔 수 없고. 증거품인 신분증에 집 주소가 있으니까, 내일은 피해자의 집도 한번 찾아가 보자고."
 "아 또 운전해야 되네, 아." 
 "그래서, 다들 알아낸 건?"


 흠흠. 수현이 첫 순서였다. 목을 가다듬고 오늘 하루를 찬찬히 정리해 보았다.


 "마을회관으로부터 길을 따라 걷다 보니 개를 키우는 집이 있더라고요. 가서 알아보니, 며칠 전 밤 개가 두 번이나 짖어서 나가보니까 누가 집 앞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자세히는 못 봤지만 머리 부분이 붉은색이였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보기엔, 마지막 말은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아요."
 "머리가 붉은색인게 거짓말이다...?"


 잠뜰의 말에 수현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거짓말이란 뜻은 반대로 말하면 치명적인 진실이란 의미지만, 아직은 정확한 방향을 찾기엔 너무 추상적인 단서였다.


 "또 라경장이랑 같이 마을 입구 쪽 마당에 드럼통이 있던 집에도 갔었는데, 별 다른 단서는 없었어요. 하지만 거기 아이가 한 명 있었는데, 그 가 좀... 힘들어하는 거 같았어요."
 "아무래도 살인 사건은 어른에게도 충격적인데 애라면 더 크게 다가오겠지."


 "그런걸까요..." 다른 이들은 별생각없이 넘겼지만, 수현은 뭔가 걸리는 게 있는 듯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각경사님이랑 같이 이장님네 창고도 봤었는데 누군가 자물쇠를 잘라냈던 흔적이 있더라고요? 각경사님 말씀대로면 누군가 밤중에 몰래 이장의 집으로 침입하려 했던 것 같아요."
 "아마 쇠줄 같은 걸로 잘라냈을 텐데."


 쇠줄? 그저 흘리듯이 덧붙인 각별의 한마디가 정곡으로 강하게 꽂혔다. 대낮에 벌어졌던 이상한 사건이 다시금 잠뜰의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재생된다. 별일이 아님에도, 그저 우연히 같은 단어가 들렸을 뿐이라도 단순히 다른 세상의 이야기라고 무시해 왔던 모든 광경이 갑작스레 눈앞에 들이닥치자, 잠뜰은 표정이 굳었던 걸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고 오히려 다른 이들의 말을 재촉했다. 

 "아, 저도 수경사님이랑 같이 돌아다녀서 별다른 내용은 없고..." 기회를 보던 라더가 타이밍 좋게 말을 꺼냈다. "웬 개 한 마리가 마을에 돌아다니던데요?"


 "개가 있었어?"
 "네, 들어보니까 이장님이 키우시는 거 같던데 풀어놓고 키우시나 봐요, 혼자 막 산에도 들어가고 그런데요. 엄청 작던데."
 "헐, 엄청 귀엽겠다..."
 "산에도 들어간다고...?"


 라더도 별다른 말이 없는 걸 봐선 마땅히 얻어낸 정보는 없는 듯했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공룡을 뒤로하고 강아지 이야기에 열을 내던 덕개가 그다음 뒤를 이었다.


 "선배들이랑 헤어지고 피해자 발견 장소랑 가장 가까운 집에 들렀는데, 거기선 3일 전에 밤중에 개 짖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수경사님이 말한 그날과 같은 날이 아닐까..."
 "3일전이면... 7일, 금요일이려나."


 서로 다른 두 증언자가 확실히 누군가 밤에 움직였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그 야밤에 누가 대체 뭘 했을까, 범행 공작? 하지만 개가 짖어 마을 주민들을 깨워버렸다. 피해자의 사망 시각과 겹치는 바로 그 시간에 마을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걸까?


 "각경사님은 뭐 외곽 쪽을 보시던 거 같던데, 뭐 본 거 없어요?"
 "나? 그 뭐야, 집 뒤쪽으로 비닐하우스가 있던데. 아니 거기서 사람 봤는데 얘가 일을 너무 못해!"
 "우와 진짜 개꼰대..."


 죽 조용히 있던 각별에게도 물었으나 역시 별 소득 없긴 마찬가지였다. CCTV도 없고, 시신 자체도 오래되어 믿을만한 증거라곤 주민들의 증언뿐인데 그마저도 위태로웠다.

 "마을 사람들이 너무 비협조적이야!" 공룡이 한탄하듯 한마디 내뱉었다. 딱히 다른 이들도 티를 내진 않았지만 다들 동조하는 기색이었다.


 "공경장은 뭐 알아낸 건 있나? 아침에 주민이랑 터널에서 싸운 이야기 말고."
 "저요? 그나마 피해자의 등 뒤에 쓰여 있는 문양과 비슷한 걸 정자에서 발견한 거?"
 "뭐?"


  회의의 흐름이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공룡도 이런 반응을 나름 기대하긴 했는지 미소를 숨기지 않았다. 이러려고 마지막까지 말 안 하고 버텼구만. 공룡은 여전히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종이에 문양을 그려나갔다.


 "아까 회의 오기 전에, 마을 정자에서 사색에 잠긴 채 마음을 정진하고 있었는데, 정자 기둥에 이런 게 새겨져 있더라고요?"


 공룡이 막힘없이 그려낸 문양은 확실히 그 숫자들과 비슷한 모양새인 데다, 또 숫자보다 길이가 길었다.


 "혹시, 암호문인가? 이거 피해자 등 뒤에 적혀있던 것도 숫자가 아니라 암호였던 거 아냐?"  
 "그럼 피해자의 등 뒤에 적혀있던 암호를 보고 정자에 답변을...?"
 "그건 아닐걸? 정자에 적힌 게 훠얼씬 오래됐던데."
 "애초에 답변이라면 굳이 정자에 새길 필요가 없지, 같은 사람이 썼을지도..."


 "해석은 아직 불가능한가?" 잠뜰이 공룡에게 물었다. 아직 뜻조차 모르지만, 숫자의 정체는 암호인 것으로 이미 반쯤 기정사실이 되었다. 


 "아니 뭐... 브루트 포싱 기법을 사용한다면 가능할지도..."
 "그냥 때려 맞히겠다는 소리잖아."


 해독하기엔 아직 정보가 부족한 건가. 물론 이 마을에 암호를 아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테지만, 암호가 뭔지 알고 있다고 인정하는 순간 범인 혹은 공범으로 의심 받을테니 당연히 인정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결국 말짱 도루묵이다.


 "오래된 암호도 그렇고, 창고 문 털린 것도 그렇고... 역시 이장님이 범인...?!"
 "심증만으로 추리할 순 없지, 애초에 이장한테 시체를 옮길 시간이 있었는지조차 모르고."
 "그래도 어떻게든 이장님이 사건과 관련이 있는 건 맞나보네요. 마을 사람들이 협조해 줄진 모르겠지만..."
 "... 흔쾌히 집 빌려준 사람을 이렇게 의심해도 되나?"
 "크흠..."


 각별의 말에 다들 헛웃음을 지었다. 하긴 제삼자가 본다면 우스운 상황일지도 모른다. 만약에라도 이장이 범인이라 한들 굳이 시신을 다시 꺼내서 전시해 놓을 전혀 이유가 없다. 마을을 위해 뭐든 할 사람이 마을에 소란을 일으켜 무슨 이득을 얻겠는가.

  그런 상황에 갑자기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와 다들 놀라 숨을 삼켰다. 노크 소리가 들리고 잠뜰이 문을 열자, 이장이 여전히 살가운 얼굴로 그들을 반겼다.


 "다들 회의는 잘 돼 가나?"
 "아, 네. 덕분에 편히 쉴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허허, 뭘 이런 걸 가지고."


 괜스레 양심에 찔려 더 과장해서 감사를 전했다. 이장은 껄껄 웃더니 방 안에 형사들을 쑥 훑어보고는 말을 이었다.


 "우리 집 개도 이제 집에 와서 나도 자러 갈 건데... 자네들은 안 자나?"
 "저희는 아직 수사가 안 끝나서..."
 "그래? 형사님들도 참 힘들겠구만. 주민들 깨우지 않게 조용히 다니고. 가로등이 없어서 어두울 텐데... 그래, 창고에 손전등이 있으니 빌려주겠네. 한 명 따라와 봐."
 "아, 네! 제가 가겠습니다!"


 라더가 솔선수범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장과 라더가 방을 떠나고, 동시에 회의도 일단락되었다.

 "해가 금방 지니까 다들 일찍 주무시는군요." 수현의 말대로, 도시였으면 가로등 불빛과 눈부신 네온샤인들이 활약할 시간대였지만, 여기는 가로등은 커녕 불이 켜진 집은 하나도 없어 창문 밖은 온통 암흑 속에 잠겼다. 들려오는 소리도 풀벌레들 울음소리뿐이라 잠뜰은 본인이 얼마나 도시와 동떨어져 있는지 실감했다.

 그러나 밤이 깊게 저물어도 아직 오늘은 끝나지 않았다. 한밤중에도 수사는 계속되었다.


― 모든 것이 끝나기까지. D-3

 



잡다한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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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편은 쉬어가는 편으로 합시다 

 

어제 올렸어야 했는데 피곤해서 그냥 쳐자버림...ㅋㅋ 죄송합니다

10월 초에 올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계속 바빠서 이제 올리네요 내 10월 어디감~~~~

 

저번편 백과사전 못 맞추겠지 하고 스포일러까지 넣어놨었는데 하나둘 추리하는 거 보고 가슴 철렁함..

참고로 총 5개의 단서가 합쳐져 있습니다 하하 하지만 (스포일러)랑 (스포일러)는 알아낼 수 없겠지!(희망사항

 

참 그리고 중요한 이야기는 아닌데 혹시 저 글을 좀 어렵게 쓰나요??

아니 저번에 설령 그러한들 < 이런 표현 썼더니 틀 소리를 들어서

솔직히 대관절 익일 < 이런 게 진짜 틀 아닌가...

흠.. 글쓰기란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올해 안에 1일차를 끝내는 걸로 노력해보겠습니다 하나둘셋 파이팅!

 

+10.28.10:02 씻다 말고 시간 오류난 게 생각나 몰래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