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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선

[미스터리 수사반] 혼선 : 꽃이 피지 않는 마을 ep.0 Prologue

※ 읽기 전에

 - 이 글은 잠뜰 TV의 컨텐츠 '미스터리 수사반'의 2차 창작 소설입니다. 모든 내용은 픽션이며 실제 인물, 단체,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 살인, 사고, 부상 등 다소 자극적이고 잔인한 소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첫 장편 소설인 만큼 미흡한 점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 점 너그러히 봐주시면 감사합니다 땡큐

 - 잠뜰 TV 구독과 좋아요

 

혼선

1. 전신ㆍ전화ㆍ무선 통신 따위에서, 선이 닿거나 전파가 뒤섞여 통신이 엉클어지는 일.

2. 말이나 일 따위를 서로 다르게 파악하여 혼란이 생김.

3. 줄이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뒤섞임. 또는 그 줄. 

 

 

 

ㅡ 미스터리 수사반은 결성 이후, 단 한 번도 해결하지 못한 사건이 없었다.

 

 어둠이 드리운 회색의 숲이 살굿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지평선 너머로 해가 꺼져가고, 울창한 나무들이 모여서 만든 빈틈 사이로 빛이 반짝거리며 그 존재를 과시하고 있었다.

 

 사람의 흔적이라곤 하나 없는 이 야산에 빛 한줄기가 길게 내리 앉았다. 손정등 불빛 하나에 의지한 채, 한 그림자가 험난한 산행을 힘겹게 이어가고 있었다.

 

나무와 나무 사이사이를 손전등으로 비춰보며 잠뜰은 계속해서 달려 나가고 있었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으나 닦을 시간조차 없었다. 놓쳐선 안 돼. 심장 고동 소리가 귓가에서 울려 퍼지고, 쉬지 않고 숨을 가쁘게 몰아쉰 탓에 목에선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 이번에 놓치면 다음은 없어.

 

 

  '하지만 어떻게 붙잡을 건데?'

 

 

 잠뜰의 시야 한구석에 또 다른 그림자가 들어왔다. 쓰러진 나무 잔해 너머, 왼손으로 손바닥보다 작은 전자기기를 조작하던 범인의 모습이 보였다. 잠뜰은 급하게 무전기를 꺼내려다, 손에 땀이 나 떨어트릴 뻔한 걸 겨우 가까스로 다시 잡아챘다.

 

 

  "현재 범인, 마을에서 11시 방향 숲으로 도주 중...!"

 

 

 잠뜰의 기척에 범인은 두리번거리다 서로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암흑이 드리워 형체만 겨우 보일 정도인 이 숲에서, 희번덕하게 뜬 범인의 두 눈만은 똑똑히 보여 뇌리에 박혔다.

 

 

 범인은 웃고 있었다.

 

 

 범인이 또다시 잠뜰의 반대 방향을 향해 도망치기 시작한 탓에, 잠뜰은 잠시 쉴 틈도 없이 달렸다. 붙잡을 수 없는 범인을 어떻게 체포할 것인가, 그렇다고 그냥 도망가게 놔둘 수 없는 노릇이었다. 무전을 듣고 온 동료들과 합류한다 해도 그땐 이미 늦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뭐라도 선택해야만 했다. 도망치게 놔둘 수 없다.

 

 잠뜰은 무언가 결심한 듯, 손에 들고 있던 무전기와 손전등을 내팽개치고 다른 걸 꺼내 들었다. 손바닥 정도 되어 보이는 크기에 가운데 새파란 보석이 박혀있고, 파란 리본으로 장식된 별을. 곧이어 별에서부터 빛이 넘실거리며, 잠뜰이 달리는 길을 따라 짙은 어둠이 가득한 숲을 푸른빛으로 채웠다.

 

 도망치게 놔둘 순 없지.

 

 가까스로 바로 뒤까지 따라붙은 잠뜰은 범인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눈이 아플 정도로 쨍한 푸른 빛의 파도가 둘을 덮쳤다.

 


 

ㅡ 모든 것이 끝나기까지. D-6

○ 1996년 6월 7일 금요일, 저녁 8시 13분

성화 경찰서 미스터리 수사반 사무실 안.

 

 

  "와, 요즘 날씨 왜 이렇게 덥냐?"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잠뜰은 그대로 의자에 걸터앉았다. 해가 졌음에도 여름의 후덥지근함은 아직 가시지 않았다. 잠뜰의 말에 잔뜩 쌓인 서류들 사이로 토끼 귀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러니까요. 벌써 열대야가 올 때가 아닌데... 근데 아직도 공 경장이랑 덕 경장은 안 왔어요?"

 

 

 걔네 아직도 안 왔어? 수현은 저번에 일어났던 테러 사건에 관한 보고서를 보던 중이었다. 잠뜰은 책상에 있던 아무 서류를 집어 부채질을 시작했다. 카드 괜히 쥐여줬나. 더우니까 팀원들 사기 좀 높여줄 겸 공룡과 덕개에게 아이스크림 심부름을 맡겼으나, 몇십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제가 가서 끌고 올까요?"

  "아냐, 됐어. 그냥 내가 보고 오는 게 빠르겠다."

 

 

 라더의 물음에 잠뜰은 손사래를 치며 다시 의자에서 일어났다. 어? 올 때 메로나. 됐거든요. 각별의 장난스러운 요청에 잠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무실을 떠났다.

 

 프론트를 지키고 있는 필립 순경에게 간단한 인사를 하고 잠뜰은 경찰서를 나왔다. 갑자기 몰아치는 서늘한 바람에 가볍게 몸을 떨었다. 비라도 오려는 걸까? 구름이 짙게 깔려있는지 하늘은 그저 새까맣기만 했다. 잠뜰은 두 경장이 갔을 법한 곳들을 떠올리며 아무도 없는 밤길을 가로등 불빛에 의지한 채 걸음을 옮겼다.

 

 가로등은 길을 따라 쭉 줄지어 서 있었다. 가로등 빛에 길을 잃은 불나방들이 타다닥 소리를 내며 저들끼리 부딪치고 있었다. 날벌레들이 만들어내는 흐릿한 그림자를 향해 멀뚱멀뚱 시선을 옮기다, 잠뜰은 저 멀리 가로등 밑에 무언가 일렁거리는 것을 보았다.

 

 

  "... 저게 뭐지?"

 

 

 조심스레 다가가니 그것은 제 빛을 내며 잠뜰을 반겼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푸른 빛의 파편이 제자리에서 고요히 떠 있었다. 

 

 

  "단서?"

 

 

 사건이라도 일어났던 건가.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애초에 이 근처에서 사건이 일어났다면, 경위인 본인이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외로이 이 장소를 지키고 있던 이 단서가 과연 자신에게 어떤 진실을 알려줄지 잠뜰은 궁금해졌다.

 

 

  "... 그렇다면 직접 확인해보는 수밖에."

 

 

 익숙하게 주머니에서 수사학의 별을 꺼내 들어 제 앞으로 들어보았다. 이내 별은 새파란 빛을 내뿜으며 잠뜰과 그 주변의 공간을 채웠다.

 


 

"... 어라?"

 

 

 잠뜰이 눈을 떴으나, 주변 풍경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여전히 어두운 밤이었고, 그녀 혼자 가로등 밑에 서 있었다. 이상하다, 분명 수사학의 별을 사용했는데. 고장이 난 기계를 확인하듯 잠뜰은 가볍게 별을 흔들어보았으나, 당연히 별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 뭔가 다른 점이라도...

 

 

 

 

"어우씨, 깜짝이야!"

 

 

 별생각 없이 고개를 돌리던 잠뜰의 눈에 다른 사람의 형체가 들어왔다.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아무도 없었을 터인 이 도로변에, 그 사람도 가로등 밑에 홀로 서 있었다. 잠뜰과는 꽤 가까운 거리에 있었으나, 그는 아직 그녀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는 두꺼운 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잠뜰은 그의 머리 주변에 무언가가 일렁거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볼 수 있는 것은 뒷모습뿐이었으나, 잠뜰은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확신할 수 있었다. 밝은 연갈색의 머리, 아래로 접힌 강아지 귀, 그리고 볼 수 없지만 느낄 순 있는 그의 감각들.

 

 

  "덕 경장! 여기서 뭐해? 공 경장은 또 어디로..."

 

 

 잠뜰의 말에 남자는 뒤를 돌아보았다. 상대와 눈이 마주치자, 잠뜰은 굳어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밝은 연갈색의 머리, 아래로 접힌 강아지 귀, 그리고 아까보다 더욱 심해진 일렁거림. 남자는 분명 덕개와 닮았다. 아니, 닮은 수준이 아니라 같은 사람으로 보였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다. 잠뜰은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놀란 건 잠뜰뿐만이 아니었다. 잠뜰과 눈이 마주친 후, 남자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잠뜰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당신은..."

 

 

 그가 입을 떼자 잠뜰은 더더욱 온몸이 굳는 듯했다. 봐선 안 될 것을 봐버린 느낌이었다.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 잠뜰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넋을 잃고 그 낯익고도 낯선 얼굴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경위님?"

 

 

 정적을 깨는 목소리에 잠뜰은 잠에서 깨듯 정신 차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잠뜰의 뒤에서 검은 비닐봉지를 양손 가득히 들고 있는 공룡과 덕개가 벙찐 표정으로 잠뜰을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으신 거... 맞죠?"

 

 

 걱정되는 듯 덕개가 잠뜰에게 물었으나, 덕개와 눈이 마주친 잠뜰은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덕 경장?! 하, 하지만 분명...!"

 

 

 하지만 다시 뒤를 보았을 땐, 그 남자는 이미 없어지고, 가로등 밑엔 그저 잠뜰 홀로 서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뭐...? 기묘한 경험에 잠뜰은 팔에 소름이 돋는 게 느껴졌다.

 

 

  "뭐야, 경위님 혹시 귀신이라도 봤어요?"

 

 

 공룡이 과장된 목소리로 놀란 척을 했다. 그럴리가요... 옆에서 덕개가 질색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냥... 그냥 요즘 일이 많았으니, 아마 피곤해서 헛것을 본 거겠지."

 

 

 마음을 추스르고, 별일 아니라는 듯 잠뜰은 구실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제야, 두 명의 손에 잔뜩 들린 봉투와 군것질거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아이스크림을 사 오랬지, 언제 매점을 털어오랬어!!"

  "공, 공 경장님이 하자고 그랬어요!"

  "으악! 먹고 싶은 거 다 사오랬잖아요!"

 

 

 내가 언제 그랬어! 잠뜰의 분노 섞인 윽박질에 둘은 서둘러 경찰서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멀어져가는 둘의 뒷모습을 보며 잠뜰은 한숨을 내쉰 뒤,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뒤로한 채 경찰서로 따라 걸어갔다.

 

 

 


 

ㅡ 모든 것이 끝나기까지. D-3

○ 1996년 6월 10일 월요일, 아침 8시 30분

성화 경찰서 미스터리 수사반 사무실 안.

 

 

 비가 창문을 두드리며 불규칙한 리듬을 만들어냈다. 밤새 내려준 비 덕에 더위는 한풀 꺾였으나, 꿉꿉한 공기는 여전했다. 빗줄기 자체는 굵지 않았으나, 하늘에 가득한 구름이 한참은 더 오겠다는 걸 알려줬다.

 

 

  "그래도 오늘은 좀 평화롭네요."

 

 

 덕개의 말대로 사무실 안은 오랜만에 평온이 찾아왔다. 각자 제 할 일을 하며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나저나, 누군가 평화롭다고 말하면 어떻게 되더라? 안타깝게도 복도를 따라 걸어오는 발소리가 휴식 시간은 끝이란 걸 알렸다.

 

 문이 열리며 또니 순경이 부산스럽게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여러분! 사건이에요, 사건...!"

  "아악 덕개야! 평화로운 거 그걸 누가 몰라! 그걸 왜 말해가지고!"

  "제가 사건 일으켰어요? 예? 제가 했냐고요?!"

  "저... 저기요?"

 

 

 두 경장의 말다툼에 또니는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맸다. 잠뜰은 익숙한 듯 그대로 둘을 지나쳐 또니에게 물었다.

 

 

  "냅둬, 진짜 싸우는 거니까. 무슨 사건이야?"

  "살인사건이요. 수사협조 요청이 들어왔어요."

  "위치는?"

  "해국면 팔손리요."

  "해국면... 뭐?"

 

 

 잠뜰은 의아한 말투로 되물었다. 팔손리가 어디야?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잘 모르는 건 다들 마찬가지인 듯했다. 공룡마저 처음 들어보는 듯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아, 그게 팔손리가요..."

 

 

 또니가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저도 잘 몰랐는데 성화시 북쪽에 있는 되게 작은 산골 지역이더라고요."

  "아, 그래? 되게 작은 마을인가 보네."

 

 

 잘 알려지지도 않은 작은 마을이라. 어째 사건 조사부터 애먹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돌았다. 그래도 정의는 실현되어야지. 잠뜰은 고개를 돌려 자기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빨리 가보자고."

  "으으... 운전하기 싫어..."

  "일어나기나 하세요."

  "움직이시죠, 어르신!"

 

 

 각별이 일부러 비척거리며 시간을 끌자 수현이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뒤에서 라더가 기운 좋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각 경사, 정 그렇게 싫으면...그럼 이번 운전은 공 경장이 하는 걸로..."

  "으아악, 그것만은 안 된다!"

 

 

 쟤가 갖다 박은 걸로 얼마가 나갔는데! 서둘러 나가는 각별을 이어서 다들 하나둘 사무실을 따라나섰다.
 마지막으로 잠뜰이 사무실의 불을 끄며 나오려던 찰나, 무언가 눈에 띄어 걸음을 멈췄다. 미수반 사무실이 있는 복도 끝 쪽에, 푸른색 단서 하나가 홀로 빛나고 있었다.

 

 생뚱맞은 곳에 덩그러니 있는 단서, 설마 저번 주에 그것처럼...? 며칠 전 그 기묘했던 일을 떠올리며 잠뜰은 홀린 듯 단서를 말없이 쳐다봤다. 확인해봐야 할까?

 

 

  "왜 그러세요, 경위님?"

 

 

 멍하니 서 있던 잠뜰을 보며 수현이 걱정되는 듯 물었다. 아, 그게... 잠뜰은 대충 변명거리를 생각해보려 했으나, 딱히 그럴듯한 건 떠오르지 않았다.

 

 

  "잠깐... 두고 온 게 있어서."

 

 

 잠뜰은 수현을 속일 생각은 추후에도 없었다, 애초에 이런 거짓말은 통하지도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저 수현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눈치채길 바랬다. 다행히게도 수현은 잠뜰의 마음을 아는지 잠시 머뭇거리다 빨리 오셔야 해요라는 말과 함께 먼저 자리를 떠났다.

 

 수현마저 떠나고 복도엔 잠뜰과 단서만이 남아있었다. 잠뜰은 잠시 주변을 살피다 조심스레 별을 들고, 재구성을 시작했다.

 


 

  "빨리 와 떠니~"

  "잠깐잠깐, 곧 가 띠띠!"

 

 

 미쳐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을 찾으려 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니 또니가 전속력으로 잠뜰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금방 가!"

  "잠, 잠깐만, 또 순경! 조심해!"

 

 

 잠뜰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또니에게 소리쳤으나, 또니에겐 들리지 않는 듯했다. 이러다 부딪히기라도 하면...!

 

 

 

그리고, 또니는 그대로 잠뜰을 통과해 반대편으로 뛰어갔다.

 

 

  "어...?"

 

 

 순간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뭔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잠뜰은 잠시 멍하니 자리에 서 있었다. 무슨 문제인지 알아내려 자신의 몸을 더듬어보았으나, 딱히 별다른 점을 찾아낼 순 없었다.

 

 

  "늦었잖아, 떠니."

  "잉, 미안 띠띠. 필립이 기다리겠다. 빨리 가자!"

  "또, 또니 순경? 저기요?"

 

 내 말이 안 들리나? 애타게 불러보았으나 돌아오는 말은 없었다. 잠뜰의 외침은 허공을 맴돌다 그 누구에게도 닿지 못하고 그대로 사라졌다. 둘은 그렇게 잠깐 대화하더니 프론트를 지나 경찰서 밖으로 가버렸다. 또니만이 아니었다, 건물 안에 있는 그 누구도 잠뜰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도 내가 보이지 않는 건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일상 그 자체였던 공간이 눈앞에서 어그러지며 낯선 풍경으로 바뀌었다. 평소와 같은 경찰서 내부의 고요한 분위기가 오히려 잠뜰을 옥죄어왔다.

 

 

  '진정하자, 이성적으로 생각해. 제대로 주위를 찬찬히 살펴보자.'

 

 

 잠뜰은 크게 심호흡했다. 요동치는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한번 주변을 바라보았다. 지금 내가 봐야 할 건, 진실뿐이다. 수사학의 별에서 다시 한번 푸른빛이 쏟아져 나왔다. 눈앞이 파도처럼 일렁이다 흐드러지며 빛의 파편 세 개가 바로 앞에 나타났다.

 

 

[파편 A : 고립]

: 마치 수증기 사이를 지나가듯 또니 순경이 나를 통과했다... 경찰서 안 누구도 나를 인식하지 못하지만, 또니 순경은 다른 이들과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그렇다는 건 이 공간의 외부인은... 잠뜰, 나다.

 

[파편 B : 뒤틀림]

: 여긴 성화경찰서 내부이다... 아니, 아니다. 친숙한 공간이지만 알 수 없는 위화감이 감돈다. 가구 위치들이 미묘하게 내 기억과 다르다. 익숙하면서 낯선 풍경 탓에 속이 불편해진다.

 

[파편 C : 재구성]

: 재구성을 통해 이 알 수 없는 공간으로 오게 되었다. 저번 주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이는 과연 우연일까? 애초에 여긴 내가 재구성한 공간이 맞긴 한 걸까?

 

<가설 : 내가 처한 상황>

: 여긴 내가 아는 성화 경찰서가 아니다.내가 재구성한 공간이 맞는 건지조차 모르겠다.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 걸 보아, 단순한 우연은 아니다.  무언가 내 재구성에 간섭하여 이러한 영향을 끼친 걸까?그렇다면 대체 뭐가?

 

 

ㅡ 똑. 똑.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잠뜰은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문틈에 비스듬하게 기대고 있던 한 남자가 보였다. 밝은 연갈색 머리에 두꺼운 코트, 그때 그 사람이다. 이번이 벌써 두 번째 만남이지만, 만날 때마다 온몸이 경직되는 느낌 탓에 잠뜰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 누구도 지금의 잠뜰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 남자만은 분명히 잠뜰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잠시 잠뜰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문을 열어놓고 사무실 안으로 다시 들어가 버렸다. 잠뜰은 열린 문 앞에서 갈피를 못 잡다, 결국 사무실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사무실로 들어가자 가장 먼저 잠뜰을 반긴 건 퀴퀴한 담배 냄새였다. 윽... 노랗게 변색된 벽지를 보자니 제때 환기는 했을지가 의문이었다. 괴로운 듯 코를 막고 있는 잠뜰을 뒤로한 채, 그 남자는 본인의 자리인 듯 익숙하게 한 컴퓨터 앞 의자에 걸터앉았다.

 

 

  "도대체 이런 곳에서 어떻게 일하는 거야?"

  "익숙해집니다."

 

 

 잠뜰의 불만 섞인 혼잣말에 남자는 무미건조한 말투로 대꾸했다. 익숙해진다고? 불현듯, 자신의 옛 동료들이 떠오르게 하는 공간 탓에 괜스레 기분만 거북해졌다. 익숙해질 리가.

 

 그대화를 끝으로 잠시 둘 사이엔 침묵이 흘렀다. 가끔 그가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때 나는 둔탁한 소리 빼고는 사무실은 적막만이 가득 차 있었다.

 

 

  "당신은 대체 누구지?"

 

 

 정적을 깨고 잠뜰은 남자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제대로 된 답변을 못 받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무색하게 그는 모니터에서 고개도 돌리지 않고 남의 이야길 하듯 무심하게 대답했다.

 

 

  "성화 경찰서에서 복무 중인, 덕개 경위입니다."

  "덕개... 경위?"

  "그러면 이제 제가 묻겠습니다."

 

 

 몇 번의 마우스 클릭 후, 그는 잠뜰도 볼 수 있게 모니터를 돌렸다. 밝게 빛나는 화면엔 신문 기사 하나가 떠 있었다.

 

 

  "프로 파일러 잠뜰. 본인 맞습니까?"

 

 

 무언가에 홀린 듯, 잠뜰은 모니터 앞으로 걸어갔다. 그 순간까지도 덕개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는지, 잠뜰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잠뜰은 화면에 띄워진 기사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읽어나갔다.

 

 

 '경찰의 날을 맞아, 최고의 프로파일러에게 질문하다.'

 

 

 신문의 내용은 금일, 경찰의 날을 맞아 미국에 있는 국내 프로파일러와 인터뷰한 내용이 다였다. 하지만, 잠뜰은 프로파일러의 사진을 보자 경악해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사진엔 잠뜰, 본인이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이 찍혀있었다. 안락의자에 앉아 편히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은 자신과 똑 닮았으나, 달랐다. 분명히 달랐다. 잠뜰은 알 수 없는 불쾌감에 소름이 돋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신문의 날짜, 잠뜰은 신문에 적힌 날짜를 보자마자 무의식적으로 소리 내 읽었다.

 

 

  "1999년 10월 21일."

 

 

 1999년, 3년 뒤. 가깝다면 가깝고도, 멀다면 아득히 멀다고도 말할 수 있는 시간. 말도 안 되는 상황 탓에 말문이 턱 막힌 잠뜰을 두고, 덕개는 그런 잠뜰의 마음을 알긴 하는지, 대화를 이어 나갔다.

 

 

  "당신을 어디서 봤을까 한참을 고민했었습니다만, 생각보다 유명하신 분이시더군요... 그런데, 왜 지금 여기에 계신 거죠?"

  "잠깐 그게 무슨..."

 

 

 왜 그렇게 말하는 거지? 잠뜰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뉴스에서 눈을 떼고 다시 덕개를 보았다. 너무나도 익숙한 낯선 얼굴. 잠뜰은 그제야 그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았다.

 

 

<이미지 분석(실패)>

: 마치 말로는 궁금하다는 듯 묻고 있지만, 얼굴엔 어떤 감흥도,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분석하려 해도, 감각들이 일렁이며 표정 읽는 것을 방해한다.

 

 

 저렇게도 능력을 응용한다라. 잠뜰은 이제서야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아는 덕개가 아니구나. 내가 아는 세상도, 경찰서도 아니다. 나마저도 내가 아니라면, 미수반은? 다른 동료들은 어떻게 된 거지?

 

 

  "오해 말고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저도 어떻게 된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저는,"

 

 

 잠뜰은 사무실에서 홀로 밝게 빛나고 있는 화면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 사람이 아닙니다. 무슨 일인지 물어도 1999년의 일 같은 건 전 모릅니다. 전... 방금까지만 해도 1996년 여름에 있었으니까."

 

 

 잠뜰의 말에 덕개는 그녀를 의아스레 쳐다보았다. 이거 완전히 취조당하는 기분이네. 괜스레 긴장된 탓에 잠뜰은 조용히 마른침만 삼켰다.

 

 

  "지금 자신은 과거에서 왔다고 주장하시는 겁니까?"

  "충분히 의심 갈만한 상황인 것은 저도 인정합니다. 저조차도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으니까요. 그나저나..."

 

 

 찰나의 기회조차도 놓치지 않으려, 회색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번뜩였다.

 

 

  "이번엔 제가 질문할 차례인 것 같습니다."

 

 

 둘 사이엔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덕개가 말없이 매섭게 쏘아보았으나, 그런 걸로 물러설 잠뜰이 아니었다. 애초에 물러설 수조차 없었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 바로 앞의 이 남자뿐이었다. 어떻게든 단서를 얻어내야만 했다. 잠시 그렇게 팽팽한 신경전을 이어가다, 결국 덕개가 먼저 포기한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말씀하시죠."

  "신문을 보니 내가... 잠뜰이 미국에 나가 있다는데, 그렇다면 미스터리 수사반은 어떻게 된 겁니까? 다른 동료들은?"

  "..."

 

 

 덕개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입술을 꾹 다문 채 묵묵히 시선을 내리깔고 있었다. 내가 뭐 잘못 말했나? 잠뜰은 자신이 했던 말을 되새겨보았으나 딱히 걸리는 점은 없었다.

 잠시 뒤, 덕개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순간, 안개가 걷히듯 일렁임이 사라져, 잠뜰은 처음으로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수사반이요?"

 

 

 그건 조소였다. 덕개는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낮게 끅끅거렸다.

 

 

  "그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았던 그 잠뜰님이 수사반을요?"

 

 

 덕개가 비아냥거렸으나, 잠뜰은 이젠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이마를 짚은 채, 알아낸 사실들을 찬찬히 되짚어보았다.

 

 

[되짚어보기]

: 현재 나는 재구성을 통해 1996년 여름에서 1999년 가을로 넘어오게 되었다. 도대체 뭐가 이렇게 만들었는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모르겠지만, 똑같은 상황이 같은 방법으로 반복된 것을 보아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할 수 없다.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넘어온 이 세상도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이 아니다. 내가 속한 수사반이 전혀 없었다면, 그렇다면 미스터리 수사반은 만들어지지도 못한 걸까?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함께 해결한 사건들은 전부 어떻게 되는 거지? 하필 이쪽 잠뜰은 해외에 나가 있으니 뭘 물어볼 수조차 없다.

 

 

  "뭐, 대충 짐작은 했습니다만, 이제 확실해졌군요. 전혀 다른 과거에서 왔다라..."

 

 

 덕개도 자신 나름대로 정리한 듯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잠뜰은 말대꾸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눌렀다.

 

 

  "다른 세계라... 평행세계라고 봐야 할까요? 도대체 어떻게 오신 겁니까?"

  "그건 저도 잘은... 그냥 평소처럼 재구성했을 뿐인데."
  "재구성이요?"
  "일종의 초능력...이라 할까, 당신 감각들처럼..."

 

 

 아차, 덕개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가는 걸 보고 나서야 잠뜰은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 여긴 내가 아는 곳이 아닌 전혀 다른 세계다. 내가 아닌 잠뜰, 본인의 선택으로 미수반이 존재조차 하지 못한 세상이다. 나 자신도 이리 다른데, 타인인 덕개는 오죽할까.
 영혼들이야 지금의 잠뜰에게는 당연한 것이지만, 보통은 받아들여지기 힘든 것이다. 어쩌면 덕개 본인에게 민감한 문제일지도 모르는 것인데. 아니, 그럼 대놓고 쓰질 말든가. 아주 잠깐이었으나, 잠뜰의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 경위의 감각 말입니다. 저희 둘 다 경위이지 않습니까."

 

 

 하하, 완전 망했네. 필사적으로 얼버무리며 잠뜰은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았으나, 괜스레 머쓱한 분위기만 더 짙어졌다. 이런다고 나아지는 건 없다. 잠뜰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는 척해서 미안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린 지금 처음 보는 사이나 마찬가지인데."
  "아뇨, 전 그저... 놀랐을 뿐입니다. 그쪽 세계에선 저희가 아주 아는 사이인가 보군요."

 

 덕개도 한숨을 쉬었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땐 한층 더 유해진 표정이었다.

 


  "너무 사무적으로 대한 건 죄송합니다. 최근 사건이 많아져 신경이 곤두서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해합니다. 며칠 밤을 지새우다 보면 피곤할 수밖에 없죠. 그나저나, 그런 것도 모르고 초면에 말을 놔버렸네요. 미안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그냥 편하게 말씀하시죠. 어차피 저보다 연세도 많으신데."

 

 

 우리 나이 차 그렇게 많이 안 나거든? 잠뜰의 불만 섞인 면박에 덕개는 그저 가볍게 웃어 보이기만 했다. 그래도 다행이군. 처음의 험악한 분위기도 많이 부드러워지고, 몇몇 의문들도 풀렸다. 하지만 아직 근본적인 문제는 그대로였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나아진 분위기에 긴장이 풀리자, 그제야 잠뜰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동료들이 떠올랐다.

 


  "아 맞다! 이럴 때가 아닌데, 완전 까먹고 있었네."

  "사건이라도 나가십니까?"

  "어어, 팔손리라는 마을에서 살인사건이 난 모양이야."

  "팔손리요?"


 덕개가 꽤나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어본 탓에 잠뜰도 덩달아 당황했다.


 "혹시 아는 동네야?"
 "모를... 수가 없죠."
 "모를 수가 없다니?"
 "제 세계가 당신 세계와 얼마나 다를지 모르겠지만..."

 


덕개는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빠졌다. 대체 뭔 일이 있었길래 저렇게 나오는 거지? 잠뜰은 덕개가 다시 말하기만을 가만히 기다렸다.

 곧 덕개가 입을 열자, 듣게 된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조심하세요, 그 마을. 큰 산사태가 일어나 하룻밤 사이에 마을 사람 대부분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산사태?"

 


 상상도 못 한 충격적인 답변에 잠뜰은 말문이 막혔다. 사라졌다니. 잠깐만, 그것보다...

 


 "언제... 그렇게 되었는지, 알려줄 수 있어?"
 "잠시만요."

 


  덕개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재빨리 두드렸다. 몇 번의 클릭 후, 찾아낸 듯 덕개가 말했다. 

 


 "1996년... 1996년 6월 13일이요."

 





━ 모든 것이 끝나기까지. D-3

 

 

 


Q. 덕경위는 3년만에 경장에서 경위로 승진한 건가요?

A. 덕경위는 경찰대를 나왔습니다. 아무튼 그럼

덧붙이기. 1996년 잠 경위와 1999년 덕 경위는 동갑입니다

 

+ 12/28

- 누락된 그림 2장 추가
- 오타 수정

 

잡다한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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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7개월 동안 써온 바로 그 소설! 혼선~!
마침내 그 장대한 이야기를 비로소 여러분께 보여드릴 수 있게 되었네요

과장 좀 보태서 이 프롤로그에 모든 떡밥을 다 넣었다고 할 정도로 열심히 썼습니다ㅎㅎ
심지어 제목에도?
더 이상은 스포니까 그만 말해야겠군요

이렇게까지 오래 걸릴 줄은 몰랐는데 이게 다 제 노트북이 구려서 그렇습니다
농담 아니라 글 복사만 하는데도 3번이나 튕겼음
그림도 2개 빠진 게 있긴 한데 렉이 너무 심해서 오늘은 도저히 못 건들겠습니다 
누락된 그림은 다음 주 중에 최대한 빠르게 추가하겠습니다

1편은 다음주 금요일날 가져오겠습니다 
다들 메리 크리스마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