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수사반] 혼선 : 꽃이 피지 않는 마을 ep.1
※ 읽기 전에
- 이 글은 잠뜰 TV의 컨텐츠 '미스터리 수사반'의 2차 창작 소설입니다. 모든 내용은 픽션이며 실제 인물, 단체,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 살인, 사고, 부상 등 다소 자극적이고 잔인한 소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첫 장편 소설인 만큼 미흡한 점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 점 너그러히 봐주시면 감사합니다 땡큐
- 잠뜰 TV 구독과 좋아요
혼선
1. 전신ㆍ전화ㆍ무선 통신 따위에서, 선이 닿거나 전파가 뒤섞여 통신이 엉클어지는 일.
2. 말이나 일 따위를 서로 다르게 파악하여 혼란이 생김.
3. 줄이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뒤섞임. 또는 그 줄.
ㅡ 모든 것이 끝나기까지. D-3
○ 1996년 6월 10일 월요일, 낮 10시 17분
팔손리로 가는 절벽 도로 위.
길을 따라 줄지어 있던 도시의 풍경은 어느새 숲으로 바뀌어 있었다. 길옆으로 깎아지른 절벽은 나무가 뒤덮어, 차가 움직이며 생긴 바람을 따라 움직이는 나뭇잎들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녹색의 파도 같았다. 비는 그친 지 오래였지만, 하늘은 아직 우중충했다.
비 온 뒤 풍기는 풋풋한 흙냄새가 짙게 깔린 숲속엔 가끔 멧비둘기 소리가 들려왔으나, 차 안에 탄 사람들에겐 전혀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각 경사님! 우회전!"
"내리게 해주세요! 차라리 걸어갈게요!"
"우욱..."
"라 경장님! 뒤에 자리 하나 안 비어요?!"
"이건 1인용이야 임마."
노란 수사 차 한 대가 위태롭게 절벽 도로를 건넜다. 곧바로 붉은 오토바이 한 대가 바로 뒤를 따랐다.
밤새 온 비 탓에 바닥은 온통 진흙으로 질척거렸고, 거기에 각별의 끝내주는 운전까지 더해지니, 승차감은 더할 나위 없이 최악이었다. 어떻게 지금까지 사고 한 번이 안 났냐. 아직도 이 불안한 곡예 운전에 익숙해지지 못한 잠뜰은 자신의 안전벨트 줄을 꽉 붙들어 맸다.
"오, 뭐야. 여기 또 다른 길이 있는..."
"앞에 비석!!"
수현의 외침과 동시에 잠시 한눈을 팔던 각별이 거칠게 운전대를 틀었다. 으아아악!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리고, 요란한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차가 급격한 곡선을 그리며 아슬아슬하게 비석 앞에 멈춰 섰다.
"흐으으... 다시는 각 경사님이 운전하는 차 안 탈 거예요!!"
"응~ 여기 교통편 없어~ 안 타면 세 시간 걸어가야 해~"
투닥거리는 공룡과 각별을 뒤로하고, 잠뜰은 비틀거리며 차에서 내려 본인이 무사히 살아서 땅을 밟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잠시 숨을 돌리고 고개를 들자, 차가 박을 뻔한 표지석이 눈에 들어왔다.
팔손리.
사람 키만 한 크기의 바위에 마을의 이름이 크게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바위 근처로 화단을 꾸미려 한 듯 해바라기 몇 송이가 심겨 있었으나, 관리해주는 사람이 없는지 제대로 봉오리가 피지도 못한 채 한쪽으로 쳐져 있었다.
바위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자, 정자 하나와 옆에 주차된 흰색 승용차가 눈에 들어왔다. 나무로 투박하게 만들어진 정자의 지붕엔 등나무 꽃이 만개해, 강렬한 향이 여기까지 전해졌다.
옆으론, 마을의 풍경이 눈앞으로 펼쳐졌다. 아직 여물지 못한 벼들이 푸른 들판처럼 바람에 흔들리고, 드문드문 불쏙 튀어나온 전봇대에서 뻗어나간 전깃줄이 하얀 하늘을 가로질렀다.
그 뒤로, 여름을 맞이한 산은 진한 푸른빛이 돌았다. 몇 겹의 산줄기는 마치 파도의 너울마냥 지평선 너머로 물결치고 있었다. 구름이 짙게 낀 하늘과 겹쳐, 마치 흰 한지 위에 그려진 한 폭의 수묵화를 떠오르게 했다.
마을의 전체적인 모습을 다 훑어본 후, 그제야 잠뜰은 마을 표지석 옆에 누군가 서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 사람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차에서 내린 미수반을 보고 있었다.
<이미지 분석>
: 2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멀끔한 얼굴, 짙은 갈색 머리가 가르마를 따라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손도 깨끗한 걸 보아 농사일하는 사람은 아닌가 본데. 묘하게 우릴 경계하는 건, 아마 각별의 주차를 처음부터 끝까지 봤기 때문이겠지...
"실례합니다만... 다들 누구신지...?"
"아, 성화경찰서에서 나온 잠뜰 경위라고 합니다."
"형사분들이셨군요! 경찰이라 그런가 운전 실력도 정말 장난이 아니시네요."
정말 끝내주긴 하죠. 남자의 말에 잠뜰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고개만 살짝 돌려 각별을 쳐다보았으나, 각별은 본인 이야기를 하는 것도 모르고 차에 잔뜩 튄 진흙은 언짢게 노려보고 있었다.
"실례지만 혹시 성함이?"
"아, 노두송이라고 합니다. 어... 직업도 말해야 하나요?"
"아뇨, 아직은. 이 마을 주민분이신가요?"
"아니요, 그건 아니지만..."
"네?"
잠뜰의 물음에 두송은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조금 사정이 복잡하긴 한데...
"제가 사실은 옆 마을에서 의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팔손리가 워낙 작은 동네라 파출소나 식료품점, 편의시설 같은 게 하나도 없고, 도움이 필요하신 어르신들도 계셔서 제가 진료 겸 잔심부름도 하고 있습니다."
"옆 마을이라 해도 꽤 멀던데, 수고가 많으시네요."
"아, 아뇨! 의사라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게 당연하죠. 수고는 형사분들이 더 많으시죠."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들이 많이 사는 시골 마을이라.'
사람을 죽이는 일은 생각보다 힘과 정신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범행은 노인보단 비교적 젊은이들이 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물론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먼저 현장부터 파악하고, 추측은 그 후에 해도 충분하다.
"말이 길어졌네요, 살인사건 때문에 오신 거죠?"
현장으로 안내하겠다는 말과 함께 두송이 먼저 발을 옮기고, 미수반도 따라 마을 안으로 향했다.
보랏빛 정자를 지나, 논밭 사이로 난 흙길을 터벅터벅 걸어 나가자, 입구에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높은 건물이 없어 하늘은 탁 트이고, 스피커가 달린 전봇대는 덩굴이 휘감아 겨우 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처마에서 떨어진 빗방울에, 담을 따라 늘여진 항아리 위엔 맑게 물이 고였다. 바람이 간질거릴 때마다 벼들이 사락사락 소리를 내며 짙은 흙내음이 풍겼다.
그 흔한 차 소리 하나 나지 않는 평화로운, 살인이라는 흉악 범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시골 마을하면 떠오르는 그런 전형적인 산골 동네,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이 마을은 3일 뒤 사라진다.
1996년 6월 13일. 3일 후, 3일이면 이 마을이 사라진다. 마을 입구를 지키던 저 표지석도, 하늘로 듬성듬성 뻗어나간 저 전깃줄도, 저 집들도, 저 사람들도. 전부 흙더미에 휩쓸려 사라져 버린다.
'주민들을 대피시켜야 할까?'
하지만 명백한 근거가 없다. 산사태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다. 이곳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날 거라곤 확신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답할 수 있을까?
잠뜰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날려버렸다.
'지금은 사건에 집중하자. 일단은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하는 거야.'
다들 새롭게 펼쳐지는 풍경을 최대한 눈에 담으려 열심히 고개를 움직였다. 혹시나 있을 단서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덕개도 열심히 주변을 살폈다. 평소의 도심과는 전혀 다른 공간에 기분이 들뜬 건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뭘 꾸물대고 있는 거야, 빨리 가자! 오래전에 묻힌 숨겨진 보물 찾으러!'
'허나 이는 무의미한 기대일 뿐. 이 마을에선 숨겨진 비밀 따윈 없다.'
"얘넨 또 뭐라는 거야..."
속닥속닥. 마을의 풍경이 울렁이며 왜곡되었다. 형형색색의 색들이 저마다 흔들리며 파도처럼 덕개를 덮쳐왔다. 제각각의 정리되지 못한 혼들의 속삭임이 귓가를 맴돌기 시작했다. 덕개는 익숙한 듯, 남들은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할 그 말들을 흘려들었다.
'깊숙이 묻혀버린 증오가 결국 싹을 틔우고 말았습니다. 이는 시작일 뿐입니다.'
'군집이라는 거죽을 뒤집어쓰고 서로가 서로의 그늘에 숨어 눈이 먼 채 짐승의 배를 불리고 있다. 조심하거라, 이 짐승의 이름은 맹신이며,'
'거짓입ㄴ/ㄷ¡─…-.'
"어...?! 뭐야, 니네 왜 그래?"
감각들의 말이 점차 지지직거리더니, 끝내 잡음으로 뒤덮여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순간 머리가 아찔하고 눈앞이 흐려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덕개는 숨이 턱 막혀, 귀를 막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마치 망가진 텔레비전이 내놓는 노이즈와 같은 괴음은 일종의 경고음처럼 머릿속에 정통으로 울렸다.
"걔네가 뭐래?"
느닷없이 들려온 말소리에 놀란 덕개가 고개를 들자 잠뜰과 눈이 마주쳤다. 그와 동시에 왱왱거리던 소음도 사라졌다. 잠뜰은 본인에게도 들릴까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그녀에게 영혼의 목소리가 들릴 일은 만무했다.
"네 유령 친구들이 뭐라든?"
" 별... 별말은 안 했어요. 그냥 평소와 같은 헛소리죠."
"그래도, 한번 말해봐."
누구보다도 현실과 증거를 중요시하면서도, 비현실적인 목소리도 귀 기울이는 사람. 덕개는 문득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이 얼마나 올곧게 빛나는지 새삼스레 깨달았다. 아마 정의를 형상화한다면 분명 그녀의 모습일지라.
"무슨...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데, 또 숨겨진 비밀 같은 건 없다고 하고. 웬 짐승이 있으니 조심하라는데..."
덕개는 질린 듯 얼굴을 찡그리고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었다.
"진짜... 얘네랑 몇 년째 같이 지내왔는데 아직도 뭐라는지 모르겠어요."
"배배 꼬아 말하긴 해도, 틀린 말은 하지 않잖아. 잘 주워 담아봐."
어느새 걷다 보니, 마을 중심에 가까워졌다. 잠뜰은 주변을 살피다 문득, 집 마당에 놓인 드럼통을 보았다. 초록색 드럼통은 윗부분과 옆구리를 터, 장작을 넣고 태우는 소각로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었다.
"저거는 뭘 태우는 거죠?"
"음... 아마, 잡초나 쓰레기 같은 걸 태우는 걸 꺼예요. 여기엔 따로 쓰레기 버리는 곳이 없으니까요."
두송의 말을 듣고 잠뜰은 고개를 끄덕였다. 구멍이란 구멍으로 불꽃이 쏟아져 나오는 드럼통 뒤로, 밀짚모자를 쓴 사람이 미수반을 뚫어지도록 쏘아보다 먼저 자리를 떠났다.
"여기, 강 건너 바로예요!"
두송이 가리킨 방향으로, 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좁지 않은 강이 흐르고 있었다. 요 밤새 온 비에 산을 타고 내려온 물들이 모였는지, 강은 금방이라도 넘칠 듯, 성난 듯이 몰아치고 있었다. 진흙이 잔뜩 섞여 부옇게 뜬 흙탕물 사이로 오르락내리락하는 큼지막한 나뭇가지 탓에 더욱 위협적으로 보였다.
'...라더 걔라면 뛰어넘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일반인은 그렇게 했다간 바로 물에 빠지겠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강을 건널 방법은 다리를 건너는 것뿐이다. 다리는 철판에 포대를 몇 겹 덧대어 만들어, 오랫동안 사용했는지 포대는 다 해져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났다. 사람이나 수레는 충분히 건널 수 있는 폭이었으나, 승용차나 트럭이 지나가기엔 무리였다.
삐거덕거리는 다리를 지나자, 바로 지역 순경이 미수반을 맞이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순경은 잠뜰에게 보고서를 넘겼다.
초동 수사 보고서
작성자 : 순경 이지영
1. 피해자 신원
이름 : 하동진(남성/34세)
직업 : 불명
2. 피해자 사인
: 복부의 자상으로 인한 과다출혈
3. 사망 추정 시간
: 1996년 6월 초 추정
4. 피해자 발견 장소
: 마을 하천 변두리
5. 피해자 유류품
: 신분증, 지갑
6. 최초 발견자
: 박문비(대학생/21세)
특이 사항
: 진술에 따르면 시신의 일부가 물에 잠겨있었으며, 강에서 떠내려온 것으로 추정.
: 시신의 옷에 7자리 숫자가 적혀 있음.
"숫자...?"
"경위님! 이것 좀 봐보세요!"
공룡의 외침에 잠뜰은 보고서에서 눈을 떼고,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보았다. 공룡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신이 있는 사건 현장을 먼저 보고 있었다.
"이거, 사건이 우리한테 넘어올 만했네."
"... 이게 뭐야?"
시신은 강가 부근에 엎어져 있는 상태였다. 강에서 끌어올린 건지 강에서부터 난 끌린 자국이 시체가 있는 곳까지 나 있었다. 근처로 다가가니 장마철의 꿉꿉한 냄새와 함께 썩은 내가 확 올라왔다. 그러나 잠뜰이 경악한 까닭은 그뿐이 아니었다.
8909339.
시체의 등판에 붉은 7개의 숫자가 정자로 쓰여있었다. 의미도, 의도도 전혀 예상가지 않는 새빨간 수의 나열은 그대로 뇌리에 박혀 각인되었다. 당황스럽다 못해 어처구니가 없는 이 상황에, 6명 모두 얼이 빠진 채 잔혹한 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뜰은 주머니에서 수사학의 별을 꺼내 들었다. 사건 현장을 만난 별은 이내 푸른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다녀올게."
그렇게 한마디 말을 남기고 잠뜰은 푸른 빛 사이로 사라지며, 재구성을 시작했다.
○ 1996년 6월 10일 월요일, 낮 10시 31분
잠뜰 경위의 재구성 공간 안.
눈을 뜨자, 창백한 푸른빛의 세계가 잠뜰을 반겼다. 다행히 다른 차원으론 안 넘어갔네. 잠뜰은 손에 들고 있던 별을 보았지만, 별은 은은한 빛을 내며, 그저 묵묵히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별을 집어넣고 잠뜰은 고개를 돌려 푸른 공간을 둘러보았다.
─사건의 재구성
〈사건파일 A. 떠내려온 시체?〉
현장부터 되짚어보자면... 마을을 가로지르는 하천, 상류보다는 하류에 가까운 부분에서 성인 남성의 시체가 발견됐다. 흙색으로 변색된 바지 밑단을 보면 물에 다리만 잠긴 상태로 어느 정도 방치된 걸로 보여. 겉보기로만 봐서는 강물을 따라 떠내려온 듯한 생김새인데... 자세한 정보는 전문가를 불러와야겠지만.
유류품에 따르면 사망자의 신원은 34세의 하동진씨. 시신의 부패가 심해 정확하게 알아볼 순 없지만, 신분증의 사진과 얼굴의 형태, 시신의 체구를 비교해보면 피해자 본인이 확실해.
사망 추정 시간은... 부패의 진행 속도를 본다면 6월 8일쯤, 고온다습한 환경을 감안한다면 6월 7일 사이에서 9일까지로 넓게 잡아놔야 할 테고.
무엇보다, 물속에 있었다면 보여야 할 현상들이 보이지 않아. 그렇다는 건 누군가 물 밖에서 죽은 시신을 일부러 여기까지 옮겼다는 건가?
'그럴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지.'
푸른 세계에 오직, 홀로 붉게 물든 단서 하나. 잠뜰은 이 공간에 들어온 순간부터 그 숫자들이 계속해서 신경 쓰였다.
"이렇게까지 수고를 들이면서 해놨다는 건 분명 그 이유가 있다는 건데."
잠뜰은 뭐라도 답이 나올까 잠시 아무 말 없이 숫자를 바라보았으나 그럴듯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몇 번이고 속으로 되뇌었으나, 그럴수록 더욱 깊은 미궁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무슨 뜻이 있을 텐데, 전혀 감이 안 잡히네. 8909339가 뭔 뜻일까?"
문제는 숫자 말고도 충분히 많았다. 저 하나에만 계속 매달려 있을 순 없다. 저렇게 해놨다는 것은 분명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고, 그렇다는 건 적어도 한 명 이상은 저 숫자의 뜻을 알고 있거나, 알아챌 수 있다는 소리였다.
"자세한 건 탐문수사 때 알아보자, 지금은 마저 수사를 끝내야지."
잠뜰은 주머니에서 다시 별을 꺼내 들었다. 오색의 빛들이 서로 어우러지며 눈앞에 펼쳐졌다.
'시신의 정확한 사인을 파악한다면...'
'시신에 신체적으로 특이한 부분이...'
'마을의 특성과 이 사건을 연관시킨다면?'
'마을 주민들의 심리를 파악할 단서가...'
'직접 피해자와의 대화를 할 수 있을까?'
'다른 세상의 관점으로 본다면?'
"어?"
난생처음 보는 다른 선택지에, 놀란 잠뜰이 무심코 손을 뻗었으나, 그런 잠뜰을 비웃듯 선택지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이건 또 뭐야? 몇 번이고 선택지가 있었던 곳을 손으로 휘저어보았으나, 그곳엔 더 이상 아무것도 없었다. 도대체 왜 자꾸 이런 이상한 일이 생기는 거야. 하지만 불안함은 도망침의 근거가 될 수 없다.
"... 일단은, 사인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중요하겠지."
잠시 따스한 노란빛이 사건 현장 이외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이 텅 빈 공간을 채웠다. 곧 피곤해 보이는 검고 긴 머리를 가진 형사가 기지개를 피며 나타났다.
"뭘 하면 됩니까."
"각 경사, 시신 조사를 부탁하네."
각별은 주머니에서 능숙하게 장갑을 꺼내 손에 낀 뒤, 군말 없이 바로 시신 옆에 자리 잡고 조심스레 살폈다.
"2, 3일 정도 되어 보이고... 부패도 꽤 진행되긴 했지만 가스 팽창도 덜 하고, 구강 내부도 깨끗한 걸 봐선, 이거 떠내려오긴커녕 물에 들어간 적도 없는 것 같은데."
"역시, 사람이 여기까지 옮긴 게 확실해."
"음... 그리고, 상처의 단면이 좁고, 굉장히 거치네요? 날붙이로 찌른 게 아닌가? 이 정도 상처라면 피가 꽤 많이 튀었을 텐데, 현장 근처에서 혈흔은 못 발견했습니까?"
"전혀, 핏자국은 피해자 옷에 묻은 게 다야. 며칠 되기도 했고, 비까지 왔으니..."
피해자를 찔렀을 때 튄 피가 묻은 옷가지도 훌륭한 증거품이 되겠지만, 밖에서 본 불타고 있던 쓰레기 더미를 생각하면 이미 태워버렸을 가능성이 컸다. CCTV는 당연히 없고, 살인사건 자체는 며칠 전이니 제대로 된 목격자를 찾을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처리하기 힘든 증거품을 찾아야 한다.
"찾아야 할 것은 사라진 흉기로군."
"아, 그리고 시신의 하반신에 전체적으로 시반이 보입니다."
"하반신에? 시신이 앉아있기라도 했다는 건가?"
"그것보단... 시신을 쪼그려 앉혀 둔 상태로 어디 좁은 곳에 숨겨놓은 게 아닐까... 합니다."
사람을 죽이고, 시체를 숨긴 뒤. 며칠이 지난 후 시신에 숫자를 적고 보란 듯이 사람들이 다니는 길목에 유기해 놨다. 상식을 벗어나도 한참은 벗어난 행동이다. 사람이 할만할... 아니,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일을 벌여놓고도 범인은 버젓이 살아 돌아다닐 거라 생각하니, 잠뜰은 속이 메스꺼웠다.
잠뜰은 별을 들고 있는 손을 꼼지락거렸다. 아직 기회가 한번 남았다. 누굴 불러야 할까?
"이거 고민이네... 의문인 게 너무 많아.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물어보죠?"
"... 누구한테?"
"피해자 한테요. 덕 경장 불러다가 굿이나 한판 하죠?"
각별의 말에 잠뜰은 헛웃음을 쳤다. 하지면 그와 별개로 나쁘진 않은 이야기였다. 피해자에게서 직접 이야기를 듣는다면 숫자의 정체나 사건 당시의 이야기나, 적어도 범인에 관련된 어떠한 단서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잠시 고민하다, 잠뜰은 다짐한 듯 별을 들어 올렸다. 금방 황혼처럼 붉은 주황빛이 햇살처럼 퍼져 나갔다.
─ 그 순간, 잠뜰은 익숙한 감정을 느꼈다. 알 수 없는 위화감, 어그러지는 현실, 봐선 안 될 것,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
빛은 사그라지고, 눈앞에 있어선 안 되는 낯선 이가 나타났다. 하지만 잠뜰은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아주 잘.
"덕 경위?"
"잠뜰 경위님?"
"에엥?"
전혀 예기치 못한 손님에 셋 다 벙쪄,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았다. 제일 먼저 어색한 침묵을 깬 건 덕개였다.
"잠뜰 경위님, 여긴... 어디죠?"
"여긴 내가 재구성한 공간인데, 난 분명 덕... 경장을 부르려고 했는데 말야. 네가... 대신 온 것 같네."
"'재구성' 이요? 잠깐, 잠깐만요. 그렇다는 건 지금 제가 잠뜰 경위님의 세계로 넘어왔다는 건가요?"
"그런 거 같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건진..."
"어... 경위님?"
각별의 말에 잠뜰과 덕개 둘 다 동시에 고개를 돌려 각별을 바라보았다. 두 명의 시선이 당황스러운 듯 각별은 말을 더듬거리더니, 얼굴을 찡그린 채 잠뜰에게 물었다.
"지금... 제 사고회로가 작동하기를 거부했는데, 상황 설명 좀 해주시죠?"
"아, 맞다. 그렇지. 그러니까, 이쪽은..."
어...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는 거지. 잠뜰은 쉽사리 말을 잇지 못했다. 각별과 덕개 사이에 낀 채 초점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잠시 고민하다 결국 포기한 듯, 간단하게 소개만 하기로 했다.
"이쪽은 성화 경찰서의 덕개 경위."
"예?"
"그리고 이쪽은 각별 경사. 내 팀원이야."
"그렇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각별 경사님."
"예??"
덕개가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하자, 각별도 어정쩡하게 끄덕이며 그 인사를 받았다. 그러곤 잠뜰 옆으로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
"굉장히 아주 잘못됐다는 생각이 드는데, 저만 드는 생각은 아니죠?"
"자세한 건 나가서 설명해 줄게. 일단 재구성부터 끝내고."
둘이 귓속말하는 동안, 덕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금방이라도 입김이 나올듯한 새하얀 공간을 살얼음판을 거닐 듯, 조심스레 몇 발짝 옮겨보았다. 시신과 사건 현장의 주위. 그 외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단순히 사건만을 위한 창백하고 푸른 공간. 자신의 감각들이 끊임없이 휘몰아치는 걸 느끼며, 덕개는 잠뜰에게 물었다.
"조금 당황스럽긴 하지만, 일단 제 도움이 필요하신 거죠?"
아, 갑작스럽게 이렇게 불러내서 정말 미안하지만... 혹시 피해자와 대화할 수 있을까?"
"피해자분 성함이 어떻게 되죠?"
"하동진. "
덕개는 시신 옆으로 가서 자리 잡더니, 고개를 돌려 잠뜰을 바라보았다.
"대부분의 혼은 말이 없습니다. 혼과 제대로 된 대화를 기대하는 건 무의미한 행동이라는 걸 명심하셨으면 합니다."
"그건 알고 있어."
"무엇보다, 혼과의 대화는 증거로써는 전혀 효력이 없다는 것도 알고 계시겠죠."
"이미 충분히 알고 있지.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은 다해봐야지."
잠뜰은 말없이 웃어보았다. 그런 잠뜰을 덕개는 잠시 바라보더니, 가볍게 목을 풀고 숨을 들이 내쉬었다.
순식간에 세상이 어두워지며 눈앞이 깜깜해졌다. 다른 이들의 목소리도, 공기의 흐름조차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이 공허 속에서도 덕개는 제 앞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 그리고 붉은 것이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거대한 눈을 두그르르 굴리며 붉디붉은 핏발을 잔뜩 세웠다.
"하동진씨. 거기 계십니까?"
덕개의 말에 대답하듯,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에서 사람의 형상 하나가 떠올랐다. 온몸이 새빨갛게 물들어 윤곽을 제대로 구별하기 힘들었으나, 눈이 있어야 할 곳에 나 있던 검은 두 구멍만은 제대로 보였다.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 부디 대답해주시길 바랍니다."
혼은 절대 열리지 않을 듯했던 입을 천천히 열었다. 마찬가지로 새까만 구멍에선, 속에서부터 긁어대며 마치 내장이라도 토해낼 듯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럴 줄 알았어, 이럴 줄 알았다고. 이 망할 마을!'
"하동진씨? 이 마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어차피 망할 녀석들끼리 상부상조하자니까, 나를 죽여?!'
"..."
'전부 다 뒈져버려라.'
혼의 마지막 말과 함께 어둠은 힘없이 무너져내렸다. 덕개는 다시 잠뜰과 각별이 있던 푸른 공간으로 돌아왔다.
"피해자분이 뭐래?"
덕개가 돌아온 것을 확인하자마자 잠뜰이 물었다. 덕개는 잠시 머뭇거리다, 하는 수 없이 말했다.
"피해자는 마을 전체에 아주 강한 원한을 품고 있습니다. 범인도 아마..."
"마을 사람 중 한 명이겠구나."
덕개가 잇지 못한 말을 잠뜰이 대신 대답했다. 덕개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의 표시를 했다.
"제 생각엔... 상부상조라는 표현이 마음에 걸립니다. 아마 살해 이유도 이와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합니다."
" 상부상조... 알았어. 명심할게."
서로서로 도우며, 공생하며 살아가기. 근처가 온통 산뿐인 이런 시골 마을에선 이웃과의 상부상조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런 좁은 동네에 대체 무슨 사연이 숨겨져 있는 걸까 하고 잠뜰은 고민에 빠졌다.
"... 별로 도움이 돼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뭐? 아냐, 도움이 안 되긴, 미안한 건 나지. 갑자기 이렇게 불러냈는데."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 잠뜰은 덕개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여전히 감각들이 일렁거리며 표정 읽는 것을 방해했지만, 자신의 마음은 분명히 전해 졌을 것이라 잠뜰은 생각했다.
"저기 경위님들?"
"각 경사? 무슨 일이야."
"아... 무래도 재구성은 이만 끝내야 할 것 같은데?"
평소답지 않게 각별은 다급하게 말하며 사건 현장이 아닌 저 멀리를 가리켰다. 잠뜰은 평소라면 신경 쓰지도 않았을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았다.
저 멀리 끝에서부터, 푸른빛의 세계는 햇빛에 녹아 없어지는 얼음처럼 서서히 사그라져, 붕괴하고 있었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빛을 잃은 파편들은 깊이를 가늠할 수조차 없는 심연 속으로 떨어졌다. 한 번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균열은 점차 커져 셋이 서 있는 곳까지 뻗어오고 있었다.
"이, 일단 어느 정도 조사는 끝냈으니 나가자! 도와줘서 정말 고마웠어! 덕 경위!"
"잠깐만...! "
잠뜰이 허둥지둥 재구성을 끝내려다, 덕개의 말에 행동을 멈추고 덕개를 바라보았다.
"조심하세요, 예감이 좋지 않아요."
길지 않은 말이었으나,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지 잠뜰은 알고 있었다. 잠뜰은 답변 대신 말없이 웃어 보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모두가 떠난 사건 현장은 빛을 잃고, 서서히 무너져, 결국 아득한 공허 속으로 사라졌다.
○ 1996년 6월 10일 월요일, 낮 10시 52분
팔손리 마을, 사건 현장 근처.
"그러니까 아까 만났던 덕 경위는 다른 세계의 존재이고,"
"그렇지."
"어느 날부턴가 갑자기 재구성을 하면 다른 세계랑 이어진다는 건가요?"
"정확해."
"예, 뭐... 알겠습니다."
"... 되게 뭐라고 할 줄 알았는데, 바로 믿어주네."
"저기 벽도 부수는 놈도 있고, 한번 보면 죄다 외워버리는 녀석도 있는데. 다른 세계야 뭐, 갈 수도 있죠."
"그거랑 이게 같나...?"
잠뜰과 각별은 재구성 때 하지 못했던 대화를 마저 나누던 중이었다. 재구성을 헐레벌떡 끝내는 바람에, 아직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머릿속이 복잡했다.
"왜 숨긴 겁니까?"
"딱히 숨기려고 한 적은 없어."
정말로 숨기려고 했던 적은 없었다, 단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뿐. 말을 꺼내기도 전에 사건이 생긴 탓에 말할 시기도 놓쳐버린 탓도 있었다. 그렇지만, 말하기 좋은 기회가 있었더라도 쉽게 얘길 꺼내진 않았을 것이었다.
"무엇보다... 애초에 말이 안 되잖아. 다른 세계라니. 당장 목격자도 나밖에 없는데, 나 혼자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고."
"혼자 귀신 보는 얘를 냅두고 그런 말이 나오나?"
"덕 경장은... 논외로 치고."
각별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라 근본적인 의문조차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사건과 연관은 없겠죠?"
"없을 거야."
아마도, 뒷말을 차마 내뱉지 못하고 잠뜰은 입을 닫았다.
"경위님~!"
멀리서 라더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신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걸어가며, 잠뜰과 각별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으나, 쓸데없는 이야긴 하지 말자고 서로 암묵적으로 합의했음을 알 수 있었다.
"왔으면 부르시지, 기다리느라 목 빠지는 줄 알았네."
"뭔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늦으신 거예요?"
"일이 좀 있었어. 다들 뭐 알아낸 거 있어?"
수현은 고개를 저었다. 다른 이들도 말은 하지 않아도 별 다른 소득은 없어 보였다. 잠뜰은 재구성에서 알아낸 정보들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사망 시각은 2, 3일 전, 살해 도구는 단면이 좁고 거친 무언가, 범인은 시신을 좁은 곳에 숨기고, 어젯밤부터 오늘 아침 사이에 마치 떠내려온 것처럼 강가에 유기한 점. 중요한 정보들만 간추려 간략히 전달했다.
그렇게 이야기하던 도중, 뒤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아이고, 이런 촌 동네에 뭐 할 게 있다고. 형사님들이 여기까지 오시나."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자,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노인과 앳된 여성이 서 있었다. 여성은 미수반을 보자마자 놀라, 잔뜩 상기된 얼굴로 옆의 노인에게 뭐라 말을 했다. 노인은 말을 듣는 도중에도 계속해서 미수반을 흘끗거리며 뜯어보고 있었다.
<이미지 분석>
여성의 쪽은 20대 초반 정도로 보인다. 머리는 한번 가볍게 꼬아 올리고, 깔끔한 블라우스 차림. 노인의 쪽은 세월의 흐름을 피할 순 없었을 테지만, 그럼에도 웬만한 청년들보다도 정정해보인다. 나란히 선 둘의 이목구비에 유사성이 보이는 걸 봐선, 아마 조손 관계가 아닐까?
"다들 어서 오시게나, 이런 촌구석까지 와서 젊은이들이 고생이 많아."
노인은 살갑게 웃으며, 먼저 미수반에게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형사님들. 이 팔손리 마을 이장, 마병호라고 합니다."
"아, 반갑습니..."
잠뜰은 이장의 악수를 받으러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으나, 그런 행위가 무색하게 이장은 그대로 잠뜰을 지나쳐, 뒤에 있던 각별에게 악수를 건냈다.
"어... 팀장은 제가 아니라 저쪽입니다."
"아이고, 그렇구만. 젊어 보여서 몰랐네, 미안합니다."
각별이 실수를 지적하자, 그제야 이장은 뒤를 돌아 잠뜰과 마주했다. 여전히 사글사글하게 웃으며 악수를 권하는 이장을 보며, 잠뜰도 떨떠름하게 손을 내밀었다. 아무래도, 어르신들이 미스터리 수사반에 관심이 있을 리는 없긴 했다.
"할아버지, 어떻게 미스터리 수사반을 몰라요?"
이장의 손녀로 보이는 여성은 이장을 보며 뽀로통한 얼굴을 했다.
"뭐라고? 미숫가루... 쓱싹단?"
"미. 스. 터. 리! 수사반! 할아버지도 참..."
"이놈아, 티브이도 안 보는데, 할애비가 그런 걸 어떻게 아냐?"
'아니, 어떻게 미수반을 모르지. 요즘 완전 핫한데.'
"크흠..."
공룡의 말대꾸가 들리지 않도록 잠뜰이 헛기침했다. 그 소릴 듣고 이장도 잊었던 것이 다시 기억났는지 목청을 가다듬었다.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숙소, 그래 숙소 관련해서 말인데... 원래는, 손님이 오면 마을회관에서 재웠지만은..."
이장은 생각만 해도 불쾌한 듯 노골적으로 얼굴을 구기며 혀를 찼다.
"지금은 마을회관 꼴이 저 모양이니, 우리 집에 자리를 내주겠네. 거길 숙소로 쓰시게나."
"네? 마을회관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말로는 설명 못 하겠네. 직접 보러 가보게나."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마을 이장과도 이야기했으니. 이젠 본격적으로 탐문 수사를 시작할 순간이었다. 잠뜰은 마을의 풍경을 다시 한번 전체적으로 둘러보다가...
"아앗! 잠깐잠깐!"
"네?! 아, 네...? 무슨 일이시죠?"
"중요한 걸 깜빡했네. 자, 다시 일로 와보게나."
이장의 외침에 다들 놀라 제자리에 굳어있다, 이리 오라는 손짓에 뒤로 돌아 터벅터벅 돌아섰다.
"무슨 일이시죠...?"
"마을 주민들에겐 내가 다 잘~말해뒀으니, 아마 다들 협조 잘해줄걸세."
"그렇군요. 감사합니..."
"그리고, 웬만한 집들은 다 열려있고. 열쇠도 다들 문 근처에 대충 숨겨놓으니! 원하는 대로 들어가도 되고."
"어... 참고하겠습니다."
'일일이 따고 다닐 수고가 없어졌군,'
'각 경사님...'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야기일세. 다들 잘 듣게나."
넉살 좋게 웃어 보이던 사람이 한순간에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농담하는 기색 없이 자못 진지한 표정에 다른 사람들 모두 영문도 모른 채 이장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산에는 들어가지 말게나. 짐승이 돌아다니거든."
"짐승이요?"
짐승? 이장의 말에 잠뜰과 덕개는 조용히 눈빛을 교환했다. 감각들이 경고했던 짐승이 바로 이걸까?
"무슨 짐승이요?"
"그야 나도 모르지! 다들 몸조심하게나!"
이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태연하게 웃어 보이더니, 바로 뒤를 돌아 쌩하고 자리를 떠나버렸다. 뭐라 반응할 새도 없이, 멀어지는 이장의 뒷모습을 모두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짐승이라고 부를 만한 게 뭐가 있지? 늑대?"
"곰?"
"호랑이?"
"무슨 백두산도 아니고."
덕개와 공룡의 맹한 대화를 잠뜰이 끊었다. 하지만 다들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을 뿐, 저마다 자기 머릿속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맹수를 그려보고 있었다.
짐승이 돌아다니거든.
수현은 이장이 했던 말을 곱씹었다. 산에 짐승이 있다. 정확히 콕 집어 말하지 않고 '짐승'이란 두리뭉실한 표현을 사용했으나, 잔뜩 긴장한 모습에, 뭔가에게 쫓기는 듯 불안한 태도를 봐선 절대 겁을 주거나 장난으로 하는 말은 전혀 아니다. 정말 산에 위험한 무언가가 있는 걸까?
"이럴 때가 아니지, 길도 없어서 차도 못 돌아다니는데. 갈 길이 멀어, 가자!"
잠뜰의 말에 다들 하나둘 움직일 채비를 했다. 숫자든, 짐승이든, 사건은 가만히 있어선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가 해결하지 못할 사건은 없으니까.'
그렇게 미스터리 수사반은 진실을 향해 한 발짝 걸음을 옮겼다.
━ 모든 것이 끝나기까지. D-3
잡다한 뒷이야기
결국 2주 꽉꽉 채워 가져왔습니다
와...아.... 정말 저에겐 글 쓰는 재주가 없다는걸 뼈저리게 알려준 2주였습니다.
앞으로의 연재 주기는 한 달에 많으면 두세 글 정도? 그 정도로 만족해야겠습니다 이거 하나에 매달리자니 다른 일을 전혀 못 하겠네요
프롤로그가 13000자고 1화가 16000자인데.
2화는 대체 분량이 얼마나 되려고 그러는 건지 하하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해주겠지!
아무튼 1화부터 벌써 온갖 정보가 범람하고 있는데, 과연 어디서부터 어디가 떡밥이고 힌트일지! 는 스포니까 말씀 못 드리고
진짜 대박 스포를 하자면 감각이들의 말이...? 어이쿠 더말하면 진짜 스포
2화는 본격적으로 마을 탐방을 하며, 마을 주민들과 라 경장님과 수 경사님의 분량이 대폭 상승할 것을 알려드리며 저는 오랜만에 꿀잠자러 가야겠습니다
댓글 잘 보고 있습니다! 많이많이 달아주세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