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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3 진실과 거짓의 상관관계

 

 

 

 





"미안, 깜빡했네." 

 그녀는 딱 두 마디로 공 경장의 연말 파티를 거절했다. 공 경장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짜증을 내다 이내 투덜거리며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사실 그녀는 단 한 번도 연말 파티를 잊은 적 없었다. 일주일 전부터 공 경장과 덕 경장이 노래를 부르며 준비한 탓에 경찰청 안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었다. 도대체 어느 바람이 분 건지. 그녀도 평소 같았다면 같이 즐겼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순 없었다.
 어젯밤. 그녀가 우연히 재구성한 사건, 진실, 비리, 입막음, 교통사고, 경찰─.
 그녀만 조용히 넘어간다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연말 파티를 준비하고, 다 같이 즐기고, 행복한 연말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정의는 실현되어야만 하고, 진실은 밝혀져야만 한다. 

"내가 모를 거 같아? 당신들, 딱 걸렸어." 

그리고 그녀는, 다음날 사라졌다.




"당신 말이 맞습니다." 

 그는 그러곤, 자신의 새로운 상사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가장 연장자인 그가 그러자, 다른 이들은 하던 말을 멈추고 못 미덥다는 듯 새로 온 경위를 노려보다 결국 자리에 앉았다. 라 경장이 분을 이기지 못하고 나지막이 욕을 내뱉었다.
 잠 경위가 사라진 지 일주일이 지났다. 수사반은 그 순간 멈췄고 그 어디에서도 잠 경위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세상은 여전히 돌아갔다. 무엇 하나 달라진 건 없었고, 다른 이들의 태평한 반응은 오히려 자신들이 과반응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게 하였다.
 여전히 분위기는 서먹했다. 새로운 사람을 보내면 우리가 그만둘 것이라 생각한 것일까? 그는 생각했다. 말이 되는 소릴. 잠 경위는 기계 부품 따위가 아니었다. 저런 사람으로 잠 경위를 대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걸까? 

"아니, 넌 틀렸어." 

그는 조용히 속삭였다. 수사반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난 괜찮아! 정말이야." 

 그는 덕 경장에게 웃어보았다. 덕 경장은 몇 번 주저하더니, 결국 자리를 떠났다. 그는  떠나가는 덕 경장의 뒤통수를 한참 바라본 뒤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흰 바탕에 지금까지 조사한 자료들이 검은색 글씨로 적혀있었다.
 감당할 수 없는 진실보다 때때론 거짓이 더 나았다. 지금의 상황이 그러했다. 과연 우리가 견뎌낼 수 있는 일인가? 아무리 숨어서 조사한다 한들 언젠가는 발각되기라도 한다면 이 수사반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이쯤에서 그만두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일상을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말로 잘만 회유한다면 모두 그만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럴 순 없었다. 
 우린 늘 해냈다. 분명 이 고통도 한순간의 기억이 되어 사라질 것이다.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이다. 

"사실 전혀 괜찮지 않아. 잘 알잖아." 

그는 자신이 무슨 말을 내뱉는지도 모른 체, 다시 일에 열중했다.




"걱정 마요. 절대 안 다칠 테니까." 

 항상 이 말을 하곤 했으나, 정말 이 말이 지켜진 적은 그렇게 많진 않았다. 그는 이들 중에서 가장 거친 일을 맡아 했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주변의 눈물 어린 시선과 몸 좀 사리라는 구박 섞인 걱정을 듣다 보면 미안하기도 하였으나, 몸 밖에 쓸 줄 모르는 자신으로서는 이게 최선일 것이라 그는 늘 생각했다.
 바람은 더욱 거세졌다. 머리는 쪼개질 듯 아팠고, 각목으로 맞은 팔이 계속 저릿저릿했다. 그는 자신 품속에 꾸겨 넣었던 서류 한 장을 꺼냈다. 그는 지식의 힘을 인정했다. 사물 하나에 백 가지 지식을 얻어내는 공 경장이나 어떠한 물건이든 척척 고쳐내는 각 경사를 보면 언제나 경이로웠다. 하지만 이해할 순 없었다. 이 얇은 서류 한 장이 경위님과 그 수많은 사람보다 무겁다는 사실을 도저히 수긍할 수 없었다.
 주변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휴식 시간이 끝났다. 그는 말을 듣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고 서류를 다시 품속에 넣었다. 

"... ." 

그는 죽어도 여기서 죽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날 믿어. 내가 언제 거짓말하는 거 봤어?"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언제나 거짓말쟁이였다. 거짓과 진실을 섞어 자신이 원하는 상황이 나오길 기다렸다. 결국 거짓이 들통난다고 하여도 천연덕스럽게 빠져나왔다. 오늘, 그의 말대로라면 그는 몸살이 나 휴가를 내고 집에서 편하게 드라마나 보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몸살도, 집도, 드라마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 가방을 끌어안았다. 열어볼까 생각했지만, 도저히 그럴 용기는 나지 않았다. 뒷감당이 두려워 무전기는 꺼놓은 지 오래되었다. 내 탓이야. 그날 아침부터 그의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던 그 말, 모든 게 내 탓이야. 그날 밤, 경위님과 같이 갔었어야 했다. 다 내 잘못이야.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더 좋은 방법은 생각나지 않았다. 내가 되돌려놔야 해.
 다시 한번 크게 숨을 들이쉬고, 이번엔 가방을 열었다. 타이머는 1분 남짓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거라면 언론의 관심도 한 번에 끌 수 있을 것이다. 죽음과 테러에 관한 지식들을 애써 무시하며 그는 다시 가방을 잠갔다. 다 괜찮을 것이다. 

"어쩔 수 없어. 이게 최선의 방법이었어. 경위님은 돌아오실 거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언제나 거짓말쟁이였다. 





"이젠 별로 신경 안 쓰는걸요." 

 그는 방금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생각했다. 별로 신경 안 쓴다고? 도대체 뭐가 그렇단 말인가. 병원은 신경 쓸 것 투성이었다. 하얀 벽, 다급한 의사의 발소리, 소독약 냄새, 살을 가르는 날카로운 칼날, 비명, 고통, 원한.
 그는 자기 능력이 항상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했었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기에 늘 신경을 곤두세운 것은 오히려 독이 되었다. 그런 그에게 유일하게 손을 내밀어 준 것이 바로 이 수사반이었다. 처음으로 남에게 도움이 되었고 누군가의 희망이 되었다. 자신의 능력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며 그는 성장했다. 그렇게 자신의 전부나 다름없는 이 수사반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생겼다. 절대로 그렇게 둘 순 없었다.
 갑자기 강한 충격이 그를 덮쳤다. 그의 분노에 응답하듯 그의 능력들이 마구잡이로 울부짖었다. 소용돌이치는 소음들 사이에서 그는 진실을 들어야만 했다. 어떻게든 정신을 붙잡고 앞으로 가려했으나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걷잡을 수 없는 분노는 절망으로 변했다. 

"제발 누가 좀 살려줘. 제발... ." 

그의 말을 듣고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잠뜰이 눈을 뜨자 보인 건 깜깜한 암흑 속이었다. 욱신거리는 몸을 천천히 일으켜 세우고, 눈이 어둠에 적응하기를 가만히 기다렸다.
 첫 번째로 보인 건, 보호자 침대에 나란히 앉아 졸고 있던 공룡과 덕개였다. 둘 다 어디서 구르기라도 한 건지 얼굴이 온통 반창고 투성이었다. 곤히 자는 모습을 보니 많이 피곤해 보였다. 
 탁자 위엔 채 정돈되지 못한 서류들이 쌓여있었고 수현이 그 서류들을 베개 삼아 자고 있었다. 한구석에 가득 쌓여있는 캔커피가 그의 노고를 대신 알려주고 있었다. 
 병실 문 옆엔 라더가 자신의 망치를 꼭 쥐고 의자에 앉아 졸고 있었다. 졸지 않으려 애를 쓴 듯 자세는 불편해 보였다. 

 잠뜰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하는 순간, 문이 열리며 강한 빛이 쏟아졌다. 잠뜰이 눈을 찌푸렸다. 빛 사이로 각별이 자판기 커피를 들고 들어왔다. 
 각별은 잠뜰과 눈이 마주치자 순간 놀라 커피를 떨어트릴 뻔했다. 한참 그들은 서로를 마주 보며 서 있다, 이내 각별이 마음을 다잡고 그토록 묻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왜 거짓말했어요." 

잠뜰은 한동안 얼굴을 찡그린 채 있다가, 결국 체념한 듯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희들이 위험에 빠질까 봐." 

 지금까지의 상황을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 한 말이었다. 그렇게 간파하고자 했던 거짓들 사이의 유일한 진실이었다. 각별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 다른 거짓들은 상관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 무사히 살아있다는 사실이었다.
 안도와 평화는 잊고 있었던 배고픔과 고통을 끌어냈다. 잠뜰은 그제야 자신이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걸 생각했다. 각별은 금세 눈치채고 잠뜰에게 물었다. 

"뭐 드실래요. 짜장면?"
"여기 병원인데 외부음식 출입이 가능해?"
"뭐 어때요, 먹을 거예요?"
"군만두도." 

 각별은 전화기를 들고 병실 밖으로 나갔다. 반쯤 닫힌 문틈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잠뜰은 다른 이들이 깨지 않도록 다시 조용히 침대에 눕고, 잠시, 눈을 감고 이 평화를 즐기기로 했다.

 

 

 

 

 

 

 

 

 

 

 

 

과도한 거짓말은 몸에 나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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